일상에서 배우다
정형외과 병동은 일반 병동과 다른 특징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입원실 복도에 휠체어를 비롯한 각종 보조기구가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고요. 둘째, 병실마다 간병인이 간호사보다 많다는 사실입니다. 환자 대부분이 관절이나 뼈에 문제가 있어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확진으로 일주일간 격리 병동에 계셨던 어머니가 어제 격리해제 조치를 받고 정형외과 병동으로 옮겼습니다. 낙상으로 고관절이 부러져 급히 응급실로 입원했으나, 당일 코로나 확진을 받는 탓에 그 동안 수술도 못하고 대기만 했었지요. 다행히 코로나 증상은 심하지 않았고, 이제 수술만 잘 받으면 됩니다.
꼼짝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첫 날부터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아들인 제가 곁에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여자인 어머니의 모든 수발을 챙겨드리기엔 부족함이 있습니다.
병실을 배정받고 자리를 잡기 무섭게 씩씩하게 생긴 아주머니 한 분이 슬쩍 다가옵니다. "간병인 필요하시죠?" 어떤 사람인가 간을 좀 보려고 하는데, 그럴 틈도 없이 어머니 상태를 살핍니다.
"당장 기저귀부터 갈아야겠네요. 시트도 엉망이고, 속옷도 다 젖었습니다. 잠시만요. 아이고! 혈관주사도 잘못 꽂혀 있고! 저리 비켜봐요. 아저씨, 1층 현관쪽에 있는 의료기기 매점에 좀 다녀오세요. 대야 큰 거 하나, 비누, 종이컵, 속기저귀, 각티슈......"
일사천리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봅니다. 아주머니의 짧고 분명한 말과 빈틈없는 동작에 저도 모르게 '시키는대로' 분부를 받들었지요.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히고 시트와 베개까지 새것으로 교체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격리 병동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어머니도 아주 개운하다며 만족해하셨습니다.
간병인에는 크게 두 종류 사람이 있습니다. 말로 하는 사람, 그리고 행동으로 하는 사람. 제가 계속 돌봐드려도 될까요?
못하겠다고 하면 바지가랑이라도 붙잡고 매달릴 판이었습니다. 제가 거절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지요.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고, 그 자리에서 채용(?)을 했습니다.
간병인의 한 마디가 계속 귓가에 남습니다. 말로 하는 사람과 행동으로 하는 사람. 어머니 위해서 살아간다, 우리 어머니 챙겨야 한다, 어머니 은혜가 바다 같다, 어머니 고생 많으셨다...... 그 동안 어머니 챙긴답시고 얼마나 많은 "말"을 했던가. 정작 내가 한 행동은 무엇인가?
간병인은 힘들고 어려운 직업입니다. 돈 벌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환자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감정을 내려놓지 않으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공부를 많이 했거나 자기계발을 열심히 해서 터득한 철학이 아니라, 일상에서 저절로 깨닫게 된 진리일 테지요.
침상 옆에 의자를 딱 붙여 앉았습니다. 그러고는 어머니 말씀 하나하나 귀기울여 듣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한 마디도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온정신을 집중해서 '대화'를 했습니다.
마침 저녁밥이 도착했습니다. 팔에 링거 주사기를 꽂은 상태라 숟가락을 들기 불편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어머니한테 밥을 먹여드렸습니다. 밥 조금, 반찬 하나, 그리고 국물. 처음에는 어색해하시던 어머니도 금세 환한 표정으로 아이처럼 웃습니다. 맛있다, 맛있다......
아들이라 싹싹하지 못했습니다. 경상도 남자라 무뚝뚝했지요. 그냥 그런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는 데 별 문제없고, 어머니도 저를 그런 아들이려니 생각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간병인의 한 마디에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생면부지 아줌마도 어머니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데, 아들인 제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나 싶었습니다.
차 가지고 왔나? 운전 조심해서 가거래이.
다리 부러져서 입원해 계신 팔십 노모가 아들한테 차조심하라네요. 불과 한 시간 집에 다녀올 뿐인데, 한양 가는 아들 보듯 염려하십니다.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그 사이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잘 좀 챙겨달라고, 간병인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댕겨오소!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인데 왜 이리 든든한지요. 아마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깨달음과 배움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일상 경험을 통한 교훈이야말로 최고라 생각합니다. 눈 크게 뜨고 두루 살피고, 귀 활짝 열어 잘 듣고, 온몸으로 부딪쳐 겪으면, 세상은 늘 우리에게 뭔가를 안내하고 가르치고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