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자꾸 놓친다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by 글장이

"내가 오늘 수련관에 좀 가야 하는데......"


어제 아침 식탁에서 불쑥 말씀하십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얘기 없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수련관이라는 곳은 어머니가 다니는 기 수련하는 곳입니다. 집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지요. 하지만, 출근 시간 밀리는 곳이 많아 왕복 2시간 훌쩍 넘는 때가 많습니다.


저한테 태워달라는 말입니다. 오전 두 시간은 중요합니다. 상당한 양의 일을 할 수가 있지요. 특히, 요즘 같이 일 많을 때는 오전 시간 집중해야만 합니다.


예정에도 없이, 목요일 오전을 고스란히 날리게 되었습니다.


9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8시 40분부터 준비 다 되었다며 재촉을 하십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집을 나섰지요.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차를 몰았지요.


아니나다를까, 도로는 엉망이었습니다. 곳곳이 정체되어 있었고, 신호도 잘 받지 못했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어머니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수다를 떨고 계십니다.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집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짜증이 폭발할 것 같아 가는 내내 입을 다물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는 차를 구입하셨습니다. 프레스토 아맥스. 얼마나 신기하고 좋았는지, 수시로 집 앞에 세워둔 차를 보러 나갔습니다.


초보 운전이라 서툰데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여기저기 차를 타고 나들이 다녔지요. 참 행복했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차를 구입한 데에는 더 큰 이유가 있었지요. 누나와 저, 학교와 학원에 태워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학교까지도 거리가 꽤 되었지만, 당시 제가 다니던 학원은 시내 중심가에 있었거든요. 밤 10시 넘어 학원 마치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습니다. 지하철도 없던 시절이지요.


아무튼, 차가 생긴 이후로 어머니는 시시때때로 저를 태우고 다녔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이나, 몸이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어머니 당신의 상황이나 조건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식만을 위해 운전대를 잡으셨지요.


신호에 걸려 정지선에 차를 세웠습니다. 곁눈으로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오래 전, 씩씩하게 운전하면서 저를 태우고 다니셨던 '커다란' 어머니는 사라지고, 작고 초라한 할머니가 앉아 있습니다.


입가에는 주름이 지고, 머리는 하얗게 바래고, 숨 소리는 거칠었습니다. 왼쪽 다리에 감각이 무뎌지면서 운전을 그만두었습니다.


다니고 싶은 곳도 많고, 여기저기 볼 일도 많고, 혼자 힘으로 하고 싶은 일도 아직...... 많으실 텐데. 잠시 외출을 할 때마다 아들한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니 그 심정 오죽했을까요.


"아이고, 너 바쁠 텐데 미안하구나. 내가 다음부터는 그냥 버스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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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관 입구에 차를 세웠습니다. 어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백 번쯤 하셨습니다.


차 문을 여는 것도 힘겨웠습니다. 겨우 문을 열었는데, 이번에는 한 쪽 발을 내딛는 것도 한참 걸리네요.


차에서 내린 어머니는 문을 닫기 전에 여러 번 숨을 고르셨습니다. 당신 몸 추스리기도 힘드실 텐데 고개를 돌려 허리를 숙이고는 환하게 웃으며 조심해서 가라는 인사를 하십니다. 조심해서 가라고. 차 조심하라고. 운전 조심하라고. 조심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차 문을 닫고, 수련관 출입문으로 걸어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봅니다. 왼쪽 다리를 절뚝거립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어머니의 작은 몸이 왼쪽으로 기우뚱합니다. 중심 잃고 넘어질까 안간힘을 쓰면서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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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돌려 집으로 향합니다.


미세먼지도 없는데, 비도 내리지 않는데, 시야가 흐려집니다.


차가 자꾸만 왼쪽으로 기우뚱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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