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과 원칙이 깨진 순간

고통이 지나가는 과정

by 글장이


언제까지 어떻게 하면 낫는다는 말을, 의사는 끝까지 하지 않았다. 나을 수도 있고, 더 심해질 수도 있고. 여러 개의 주사 바늘을 몸 구석구석에 찔러넣는 아픔을 간신히 견뎠음에도 희망 없는 말만 듣고 또 막막한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현실에 무너졌다.


목숨이 위태로운 중대질병이 아니란 사실이 그나마 조금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두통, 치통, 요통 등을 오랜 시간 앓는 사람들이 왜 우울증에 걸리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세를 바로 해야 한다는 말을 수백 번 들은 것 같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 앉아서 글 쓰는 사람이 매 순간 자세를 바로 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 그것은 배 고픈 사람이 입을 조금만 벌리고 밥 먹는 습관을 가지란 소리나 다름 없다.


10년 하고도 7개월. 하루도 빠짐없이 글 쓰고 책 읽었다. 덕분에 내 삶은 기적처럼 달라졌다. 신경 계통에 문제가 생겨 모든 관절이 부서질 듯 아팠던 요 며칠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꾸준함과 원칙이 깨진 순간. 몸이 아픈 것 못지않게 마음까지 타버리는 듯했다.


시술을 받고 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이 꾸준함과 원칙을 깬 날들을 버티게 해주었는데, 이제는 그나마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다. 몸이 아픈 걸 어쩌냐고, 10년 썼으면 좀 쉬어도 되지 않느냐고,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마음속에서 변명과 핑계가 스물거린다. 내가 그토록 혐오했던 변명과 핑계가.


시술이 끝난 어제는 확실히 달랐다. 의사는 불투명한 말을 했지만, 통증이 사라진 듯해서 다 나은 줄로만 알았다. 날아갈 것 같았다. 퇴원을 하고, 점심으로 갈비탕을 먹었다. 이제 다시 쓰고 읽는 삶으로 돌아와 정상적인 내 일상을 누릴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적어도 어제 저녁까지는 그랬다.


밤 8시쯤부터 통증은 다시 시작되었다. 오른쪽 정강이가 슬슬 저리기 시작하더니 허리와 등까지 뻐근했다. 이게 아닌데. 시술 받았는데 왜 이러나. 온 정신이 통증으로 향했다. 수십 개의 바늘이 온몸을 콕콕 찌르는 듯했다. 병원 치료만을 유일한 희망으로 여겼던 내게 통증 재발은 충격이었다.


누워도 아팠고 앉아도 아팠고 일어서도 아팠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가 의사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신경 시술을 받고 난 후에도 짧게는 사나흘 길게는 한 달 동안 통증이 지속된다고 적혀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상태로 한 달을 더 버텨야 한다니. 그렇다고 한 달 후에는 말끔히 낫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수술을 알아 보았다. 신경 잘 본다는 병원 위주로 검색해 보았지만, 속 시원한 답변은 없었다. 지금 이 상태로 물리치료 받으며 버티는 수밖에.


어젯밤에 맥북을 펼쳤다가 도로 닫았다. 천지가 개벽해도 나는 '쓰는 사람'이었는데, 불과 일주일 사이에 쓰는 행위가 어색해져버렸다. 사업 실패 후 모든 것을 잃었던 내가 다시 살게 된 유일한 이유. 이러다 영영 글쓰기를 놓아버리는 건 아닌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그래도 10년 넘는 시간 기상 습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다.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밖으로 나갔다. 동이 트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은 조금이라도 낫기를 기대했다.


아침 내내 등과 허리와 다리를 부여잡고 식은땀을 흘리다가 결국은 맥북을 펼치고 부엌 식탁 앞에 앉았다. 신경이 나를 못살게 구니까, 그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자는 심산이었다. 여기까지 쓰는 동안 그래도 좀 나았다. 그래. 한 번 더 버텨 보자.


마음 괴로운 적 있었다. 지금은 몸의 고통을 견디고 있다. 사람이 살면서 몸과 마음의 고통을 두루 느끼는 것이 당연할진대. 나는 마음 힘든 것도 좀체 견디지 못했고, 몸 아픈 것도 잘 참지 못했다.


혹시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은 아닌가 돌아본다.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인가. 욕심이 과해 화를 부른 것인가. 또 예전처럼 주변 사람 돌아보지 못한 채 앞만 보며 질주한 것인가.


과거에 마음 무너졌을 때도 그랬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이런 가혹한 벌을 받아야 하는가 하고. 그때도 답은 찾지 못했다. 과거 잘못을 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현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슨 잘못을 저질러 지금 이렇게 고통 받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제는 어떻게든 견디고 버티고 넘어서야 한다는 것.


수요일 강의를 금요일 밤으로 미루고, 목요일 문자수업도 휴강했다. 8년 강의하는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정해진 날짜,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듣던 수강생들이 허전해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나 하나 바라보고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진통제와 항생제를 삼킨다. 오늘은 몸이 찢어져도 할 일을 모두 다 할 셈이다.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강의자료도 만들고 수강생 원고도 검토하고 각종 공지사항도 챙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사실을 모른다. 아들은 학교 축제 기간이라 마냥 즐겁다. 아내는 모든 걸 알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다. 결국 나 혼자서 견뎌내야 한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며 슈퍼맨 증후군이라 칭하기도 하고, 강박증이라 부르기도 한다. 서럽지 않다. 책임 느끼는 걸 즐긴다. 어쩌면 지금의 이 책임감과 혼자 견뎌야 한다는 무게감이 상황을 극복하는 치료제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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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보니 그렇더라. 영원한 고통은 없다. 또 한 번의 위기가 내 삶을 관통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경험 하나가 쌓이는 과정임을 알게 될 터다. 쓰고 나니 좀 낫다. 역시 글쓰기가 최고의 명약이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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