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과 감사를 찾아서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입니다. 자리에 누워 있다가 일어서려는데 몸에 중심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신경부종으로 온몸이 퉁퉁 부어 있고, 염증과 디스크 파열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거든요. 근육과 인대 등 어디 한 군데 멀쩡한 곳이 없습니다. 몸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지요.
휘청거리면서 중심을 잃었는데 하필이면 왼발을 세게 접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온몸 중에서 상태가 제일 멀쩡한 곳이 왼발 하나였는데. 순간적으로 발끝에서부터 전류가 흐르는 것 같더니 이내 극심한 통증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걸음 내딛기가 힘들었지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칠곡경대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어떤 정신으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접수처에다 이름을 얘기하고는 바로 대기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어찌나 아픈지 숨을 쉬기가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엑스레이는 찍어드릴 수 있지만 지금은 정형외과 담당의사가 없습니다."
전국적으로 병원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따지고 들지도 않았습니다. 119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불렀고, 가까운 카톨릭대학교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습니다.
담당의사는 제 발을 보더니 일단 엑스레이부터 찍어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뼈나 인대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고 봉와직염일 수도 있고 통풍일 수도 있다며 여러 가능성을 내놓았습니다.
엑스레이 찍는 동안 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두 달 전부터 사람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 생각이 들 만큼 힘들었거든요. 아파도 어찌 이렇게 아플 수가 있을까. 오죽하면 눈물도 쏟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겠습니까. 그런 와중에 왼발까지 이렇게 다치고 나니 답답하고 절망스러운 심정 이루 표현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뼈나 인대에는 이상이 없다 합니다. 몸 속에 염증이 많아서 봉와직염이나 통풍일 가능성이 크니 일단 주사를 두 대 맞고 진통제와 항생제를 먹어 보라 했습니다. 약 봉지 들고 절뚝거리며 병원을 나서는데 서럽고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집으로 가지 않고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정신을 좀 추스린 후에 집에 가려고 했지요. 다리 저는 모습 부모님이 보시면 큰일납니다. 사무실에 앉아 크게 심호흡을 했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올해 무슨 삼재가 끼었나 보다. 몸도 마음도 조심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창밖을 바라보는데,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왼발을 다치기 전까지 나는 어떠했는가. 온몸이 찢어질 것 같다며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왼발을 다치는 순간부터 사무실에 들러 자리에 앉는 때까지 나는 왼발 이외의 다른 통증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더 아플 수 있습니다.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더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언제 어떤 순간에도 '이만하니 다행'인 셈이지요. 왼발이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아팠습니다. 덕분에! 다른 부위에서 수시로 치고 올라오던 통증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두 달 전부터 최악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아플 수가 없다며 좌절하고 절망했었지요. 왼발이 무너지는 순간, 그나마 왼발이 멀쩡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못했음을 후회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당장의 고통과 부정적인 감정에만 휩싸여 '더 나빠질 수도 있음'을 잊습니다. 이만하니 다행이다, 더 악화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힘들고 어렵겠지만, 이런 생각을 억지로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버티고 견딜 수가 있습니다.
생각 난 김에 몇 가지 더 정리해 봅니다. 그래도 손가락 부서지지 않아 글이라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중대질병처럼 당장 목숨이 오가는 병 아니니 그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절뚝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내 발로 걸어다닐 수 있으니 이것도 다행 아닌가. 극단적인 경우, 온몸을 열고 수술하는 방법이 있다 하니 무조건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3년에서 5년 정도만에 건강을 되찾은 경우 많다고 하니 희망도 있지 않은가. 나를 응원하고 위로해주고 따르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적다 보니 아직은 제가 무너질 때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더 확실하게 듭니다. 네, 물론 고통스럽습니다. 잠시도 몸이 평온하지 않습니다. 이러다 정신병 걸리는 건 아닌가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버티고 견뎌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7월 정규수업 개강하는 날입니다. 오전에 첫 수업 진행했습니다. 부러 목소리를 높였고, 제가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수강생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강의를 하니까 더 할 만했습니다.
작년이나 재작년에 비해 훨씬 무더운 여름이 왔습니다. 통증과의 싸움 덕분에 더위를 잊고 삽니다. 게다가, 지금 제가 겪고 있는 고통은 찬바람 불면 더 심해집니다. 겨울 아니라 여름에 아파서, 그 또한 다행입니다. 좋은 말만 하니까 더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