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받아들인다

고요한 일상

by 글장이


글을 쓰고 책을 내면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제, 사회 트렌드, 독자 관심, 문장력 등 모든 것들이 맞아 떨어져서 첫 번째 책부터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는 사람들 얘기죠.


여덟 권 출간했습니다. 이제 아홉 번째 개인저서를 마무리중에 있습니다. 과거 제 인생과 비교하면, 책을 내고 난 후의 삶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변화입니다.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 막노동꾼, 암 환자라는 최악의 수식어가 작가와 강연가라는 근사한 업으로 바뀌었으니까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러한 저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란 점입니다. 9년 걸렸습니다. 느리게, 하나씩, 차곡차곡. 저의 변화는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책 출간하고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거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부푼 꿈을 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바로 그 꿈이 우리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제 주변을 보면 그 꿈이 너무 부풀어 있다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상대적으로 노력은 적게 하면서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 보면 안타깝습니다. 분명 실망하고 좌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권 쓰고 사라진 작가 많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책을 쓰고 나면 자기 삶에 엄청난 변화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입니다. 막상 출간하고 보니 별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거든요. 에이, 별 것도 없네. 그러면서 펜을 놓아버리는 겁니다.


도서관 어딘가에 처박혀 먼지 뿌옇게 내려앉은 한 권의 책도 분명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을 겁니다. 비록 많은 이들의 가슴에 닿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책을 읽은 누군가에게 뭔가 하나라도 주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작은책'은 자신의 소명을 다한 거지요. 작가는 자신이 쓴 그 '작은책'의 가치를 새기고, 또 다른 이야기를 썼어야 합니다.


스마트폰과 SNS 탓에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자극의 세기는 날이 갈수록 강해집니다. 은근하고 잔잔하고 흐뭇한 기쁨과 행복은 찾기 힘들고, 엄청나고 빠르고 대단하고 휘황찬란한 이야기만 넘쳐납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과가 당장에 파장을 일으킬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 것이죠.


기대는 반드시 실망을 낳습니다. 실망이 누적 되면 좌절과 절망에 이르게 되지요.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을 거듭하면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고, 결국 다음 도전을 망설이고 주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기대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멋지게 보이려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을 날마다 꾸준히 계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에는 번쩍 하고 폭발이 일어나는 경우가 드뭅니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폭죽을 터트릴 수는 없겠지요. 묵묵히, 느리게, 고요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태도야말로 삶을 근사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오늘 쓰는 글이 세상을 뒤흔들지는 못할 겁니다. 연말에 출간하는 아홉 번째 책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이 '폭발'하거나 지축을 흔드는 일은 없을 테지요.


그럼에도 저는 오늘도 글을 씁니다. 책을 읽습니다. 강의 자료를 만듭니다. 세상은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아무런 반응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매일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이유는, 적어도 제 글을 읽는 사람의 세상은 바뀔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길을 가다가 휴지가 떨어진 걸 보면 줍습니다. 그 휴지 한 장 줍는다고 지구가 깨끗해질까요? 그거 한 장 치운다고 우리 동네가 싹 다 맑아질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기꺼이 휴지를 줍는 것은, 적어도 바로 그 자리는 깨끗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글 쓰는 일은 고요한 행위입니다. 불꽃놀이를 하며 소리를 지르고 축하를 하고 파티를 열고 환호성을 지르는 축제와는 결이 다릅니다. 마음 속에 대축제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으면 글 쓰기가 힘듭니다. 눈에는 번쩍이는 섬광이 보이고 귓가에는 온통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릴 텐데 어떻게 가만히 앉아 글을 쓸 수 있겠습니까.


글 쓰고 책 출간하는 일이 파도가 아니라 강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강물은 잔잔히 흐르면서도 깊이가 있고, 마치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엄청난 속도로 흘러가지요. 거품 일으키며 높이 솟지는 않지만, 철썩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삶을 향해 우직하게 흘러가는, 그런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축제가 벌어지는 인생이라면 좋겠지요. 물론, 그것도 꽤 피곤한 일일 것 같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우리 인생에는 온갖 일이 벌어지는데요. 아무래도 번쩍이는 섬광 같은 일보다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일상이 훨씬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덤덤한 일상을 슬기롭게 보내는 태도를 갖추지 못하면 매일이 지겹고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흥미진진하고 이벤트가 열리는 일상을 좋아하고 기대했습니다. 피곤하더라고요. 파티에 참석하느라 피곤했고, 기대만큼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 않아 실망하느라 피곤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습성이 많이 바뀌었는데요. 차분하게 앉아 글 쓰고 책 읽고 강의 자료 만드는 시간이 마치 명상처럼 느껴졌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의 고요를 즐기게 된 후부터 삶의 밀도도 더 높아졌고, 인생도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


화성에 다녀온 이야기에 열광하는 독자도 많겠지만, 늙은 어미의 주름진 손을 잡아 보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독자가 훨씬 많습니다. 작은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사랑할 수 있는 힘. 글쓰기로 가능합니다.


오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고요한 오늘을 사랑할 겁니다. 글 쓰고 책 읽으며 하루를 보낼 테고, 밤이 되면 제 안이 또 가득 차겠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

책쓰기 수업 명함 신규.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