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재판은 총 세 번 받습니다. 판결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 피고인이 억울하게 죗값을 치를 수도 있다는 가정, 형량이 무거울 수도 있다는 판단. 다양한 경우의 수를 헤아려 공정하고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 위함이겠죠.
1심에서 법정구속이 되면, 수감 된 상태에서 두 번의 재판을 더 받아야 합니다. 수감 된 사람들 심정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내린 듯한 기분입니다. 구속 상태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하루라도 형량을 줄여 빨리 나가고 싶은 것이 당연한 마음일 테지요.
비싼 변호사를 쓸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야 온갖 방법을 총동원하겠지만, 없이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진심을 담아 판사에게 편지 쓰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내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죄를 짓긴 했지만, 남겨진 가족을 비롯하여 상황이 좋지 않으니 제발 한 달이라도 형량을 좀 줄여달라, 뭐 이런 식입니다.
같은 방을 쓰는 아홉 명 수감자들이 판사에게 쓴 편지를 읽어 본 적 있습니다.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 온몸에 문신 그린 깡패도 있었으며, 동두천에서 마약 거래하다가 들어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 진짜 눈물 나는 줄 알았습니다. 문법도 엉망이고 문장도 거칠고 앞뒤 문맥 어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가슴이 짠하고 그 심정이 이해가 되고 방법만 있다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글쓰기 기술 따위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편지를 쓰는 대상과 목적에만' 충실했습니다. 누구에게 무슨 말을 전할 것인가! 핵심 독자와 메시지에만 집중했다는 뜻입니다.
사업 실패 직후, 돈 빌려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적어서 누군가에게 보낸 적 있습니다. 형편이 나아진 후로는, 돈 빌려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받아 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메일을 쓸 때는 글쓰기 따위 배운 적도 없었고 개념도 없었습니다. 제게 메일 보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돈 빌려달라는 내용의 메일'은 참으로 읽을 만했습니다. 구구절절 그 사정이 안타깝고, 얼마나 절절하게 돈이 필요한가 선하게 보이는 듯했지요. 저와 그 사람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잘 쓰려고 노력한 적도 없고, 문법이나 문장력 배운 적도 없고, 수려한 표현 갖다 쓰려고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돈 빌려달라고 말할 대상이 분명했고요. 얼마를 언제까지 빌려달라는 메시지가 분명했습니다. 핵심 독자와 메시지가 분명하니까 술술 잘도 쓸 수 있었던 겁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딱 두 가지만 명심하면 됩니다. 첫째, 핵심 독자이고요. 둘째, 메시지입니다. 만약 지금 글이나 책을 쓰고 있다면 묻겠습니다. 당신이 쓰는 글을 읽을 핵심 독자는 누구입니까? 그 글에 담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딱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무슨 말을 전하려 한다! 명확하게 정하고 쓰는 사람은 문맥이나 구성이나 문장력 따위 생각지 않고서도 선명한 글을 쓸 수가 있고요. 핵심 독자와 메시지가 엉성하거나 아예 없는 사람은 아무리 잘 쓰려고 노력해 봤자 헛수고에 가까울 겁니다.
글을 쓰기 전에 반드시 분명하게 정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쓸 것인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전할 것인가. 이 두 가지를 명확하게 잡기만 하면 글쓰기를 중도 포기하거나 내일로 미루는 일 없을 겁니다. 판사에게 형량을 줄여달라는 편지를 중도 포기하는 죄수가 있을까요? 돈 빌려달라는 편지를 내일로 미루는 사람 있을까요?
말과 글은 표현의 수단입니다. 듣는 사람 읽는 사람 명확해야 하고요. 전하고자 하는 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선명해야 합니다. 대상과 메시지가 흐리멍텅한 것은 말도 아니고 글도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글을 잘 쓰고 싶다 하고, 또 비싼 수강료 내면서까지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그 심정이 절박하고 열정도 대단하다 봐야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글쓰기에 관한 기교와 요령 많이 배운다 하더라도 핵심 독자와 메시지 잡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은 누구에게, 누구를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까? 그에게 무슨 말을 전하려 합니까? 주제, 소재, 구성, 문체, 문법, 문맥 등 다른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서라도 "핵심 독자와 메시지"부터 잡아야 합니다.
덧붙이자면, 핵심 독자는 당장 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면 좋습니다. 핵심 메시지는 구체적이고 즉각 실천 가능할수록 효과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타인에게 조언 한 마디 건넬 따뜻한 마음과 능력 지니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무슨 말을 건넬 것인가.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