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는 아버지를 놓지 않았다
아저씨는 아버지를 부둥켜 안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아저씨를 놓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주머니도 두 손을 꼭 잡고는 마주 서 있었다. 내가 차에 시동을 걸자, 그제야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놓고 차에 올랐다.
네 사람 모두 여든 넘었다. 아버지와 아저씨는 스무 살 즈음에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다. 60년 세월이 지났다. 연락 끊어진 상태로 30년 넘게 지내다가, 최근에 다시 소식이 닿았다. 합천에 살고 계신다 해서 지난 3월에 아버지와 어머니 모시고 다녀왔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살아 있으니 좋다! 이렇게 또 만나고!"
아저씨는 '죽음'이란 단어를 쉽게 썼다.
"은대야, 나한테 전화해도 안 받으면 죽은 줄 알거라."
"은대야, 내년 봄에나 다시 오면 난 죽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죽음'을 말하면 괜히 재수 없을 것 같아 귀를 닦고 싶은 기분인데, 아저씨의 말은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아저씨는 이미 죽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아주머니는 9가지 지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종일 기다리고 진료 받고 약을 탄다고. 지난 주에 갔을 때는 치매가 진행중이니 약을 꼭 챙겨먹으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어이쿠, 그래서 어째요. 라는 말이 내 입에 툭 튀어나올 뻔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덤덤했다. 내 나이 세상에서 치매는 끔찍한 질병이지만, 당신들의 세상에서 치매는 내려놓아야 할 질병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노친네들이랑 밥 먹고 얘기 나누는데도 은대 너는 질색하는 기색 하나도 없이 잘도 대화하는구나."
나도 예전에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과 함께 있을 때 입을 굳게 다물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고, 혹여 말 실수라도 할까 싶어 조심했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나의 '조심'이 오히려 어르신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 편하게, 있는 그대로, 어르신들이 살아온 세월을 인정해주고, 궁금한 걸 물어 보고, 그들의 대답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훨씬 나은 태도란 걸 깨달았다.
노인은 늙은 사람이 아니다. 노인은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여 모든 삶에 의욕을 잃은 사람이다. 수시로 죽음을 툭툭 내뱉으며 농담처럼 사는 아저씨는, 겉모습은 노인일지 몰라도 정신은 하나도 늙지 않았다.
아저씨는 쉰두 살 때부터 소송에 휘말려 최근까지 삶을 통째로 법정 싸움에 바쳤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땅을 문중에서 빼앗으려고 했고, 끝까지 싸워 결국 승소했다.
땅은 되찾았지만, 세월과 돈과 사람은 다 잃었다. 재판에 든 비용이 거의 땅값과 맞먹으니, 이기고도 허탈할 뿐이라고, 아저씨는 한숨을 쉬었다.
"그냥 땅을 주고 말 것을 그랬나. 싸워서 되찾은 것이 제대로 된 판단이었나.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년 봄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아저씨는, 내년 봄이 오기는 오냐 라며 서운한 모습 감추지 않으셨다. 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악수를 청하는 아버지를 와락 껴안으셨다.
"죽지 말어! 약속하게! 봄에 꼭 다시 와야 한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