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고마운 일상

오늘, 지금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by 글장이


척추 수술과 신경 치료 받으면서 많이 아팠다. 이후로도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다녔는데, 한 걸음 뗄 때마다 지릿지릿 전깃불로 지지는 듯했다. 한여름 볕은 뜨거웠고, 근린 공원 물놀이장에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으며, 나는, 죽고 싶었다.


또 한 번 절실하게 죽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다. 사업 실패하고 전과자 파산자가 되었을 때.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발바닥이 간질간질하고 숨이 가빠진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에서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느낌. 오직 죽음만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속삭임이 계속 들려왔었다.


어쨌든 살았다. 살아서, 나는 지금 글을 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키보드에서 손을 거두어 얼굴을 쓸어내린다. 살아 있는 게 맞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든 때가 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사람 관계 삐걱거릴 때, 가족 갈등 심할 때, 돈 문제, 건강 문제, 그리고 외로울 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문제 같지만, 당사자에게는 더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일로 여겨질 때도 있는 법이다.


지나온 인생 돌이켜보면, 좋았을 때도 많았고 고통스러울 때도 많았다. 한데, 굳이 그 비중을 따져 보자니 힘들고 아팠던 때가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어느 철학자가 "인생은 고행이다"라고 한 말이 나이 오십 넘으니 비로소 와닿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힘들고 아픈 순간을 어떻게 견디고 극복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인생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열쇠 아니겠는가. 정답은 없겠지만, 각자 나름의 처세를 궁리하고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는 것이 꼭 필요하다 하겠다.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이 나와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인가를 살펴야 한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 그런 건 없다. 다만 내가 그 의미를 찾지 못했을 뿐. 아니,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을 뿐. 심지어 감옥에 갔던 일도 지금의 내게는 커다란 의미로 남아 있을 정도니까.


접촉사고도, 아이들 칭얼거리는 것도, 남편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것도, 아내가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퍼붓는 것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몸 여기 저기 통증이 생기는 것도.......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다.


매 순간 그런 의미를 찾아 나름의 해석으로 삶을 풀이하는 사람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맥없이 주저앉지 않는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 박사가 주창한 로고 테라피는, "왜 살아야 하는가 의미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다"라는 그의 말을 뒷받침한다. 의미를 통한 치유. 우리는 죽는 날까지 의미를 찾아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보니, 고통스러운 날들에 삶을 끝내지 않고 지금껏 살아 새로운 삶을 만난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가 떠올리게 된다. 사람 때문에 마음 다치고, 일 때문에 속상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문제들에 화를 내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이 소중한 일상을 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구나 반성하게 된다.


문제에 매몰되면, 그 문제는 사정없이 커지게 마련이다. 한 걸음 물러나 의미를 생각하고, 내게 주어진 기적 같은 일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여길 줄 아는 지혜와 태도가 필요하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 우리는 그런 사소한 일들로 매 순간 애를 태우는 것이다.


의미와 가치는 내 안에서 발현한다. 행복을 찾겠다고 팔을 걷어붙이는 사람들 보면, 그들은 세상이 한 번 뒤집어지고 모든 사람이 자기 뜻에 맞게 바뀌지 않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도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매일 꾸준히 노력해야 하고, 충분한 시간이 지나야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감히 반대한다.


행복이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는 거라면, 우리는 지금 즉시 행복할 수 있다. 행복하기로 결심하면 된다. 그리고 행복하면 된다. 마음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 당장 행복할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이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아울러, 지금 즉시 행복하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는 것. 관심 가지고 결단 내리면 누구나 지금 즉시 행복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감옥과 막노동 현장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나는 감옥에서 행복했다. 행복하기로 결심하고 행복하다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웃었다. 매 순간 웃고 있는 나를, 같은 방 재소자들은 '미친 놈'이라 불렀다. 덕분에 감옥 생활 편하게 했다.


막노동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매일 웃었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상태에서도 웃었다. 업체 사장들이 나를 좋아했다. 인상 쓰고 짜증 부리고 불평 불만 입에 달고 있는 일꾼들보다, 매일 환하게 웃으면서 분위기 좋게 일하는 내가 마음에 들었던 거다. 덕분에 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더 받을 수 있었다. 행복은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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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할 날 많이 남았지만, 고난과 역경 어찌 다 견디고 여기까지 왔을까 회한에 잠길 때가 많다. 나는 정말로, 힘들었다.


여덟 평짜리 내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최신 노트북에 고급 키보드 장착한 채로 글을 쓰고 있다. 가을비가 내린다. 커피도 마신다. 오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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