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지키는 힘
감옥에 가서도 하루 세 끼 밥 챙겨 먹었다. 법정에서 파산 선고를 받은 날에도 밤에 샤워를 하고 잤다. 막노동 현장에서 삽질을 하던 시절에도 아침에는 일어나 옷을 입고 밤에는 양말을 벗고 잠들었다.
지옥 같은 현실이 수 년 동안 이어졌지만, 일상을 완전히 뒤엎은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나는 매일 밥을 먹었고, 잠을 잤으며, 샤워를 했다. 견디기 힘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는 얘기다.
나뿐만 아니다. 시련과 고통을 통과하는 많은 사람이 지극히 괴로운 시간에 몸부림치지만, 그럼에도 식사를 하고 씻고 자고 사람을 만난다. 좌절과 절망의 강도가 아무리 커도 일상을 뿌리째 뽑아내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고난과 역경은 늘 우리 일상에 붙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하면, 대부분 사람은 흔들린다. 어쩔 줄 몰라 하고, 고통스러워 하며, 한숨을 내쉬고, 걱정하고 근심한다. 때로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도 부리며,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도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 일상을 일상처럼 살아내야 한다. 일찍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찬물에 샤워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해야 할 일들을 한다. 매일 주어진 일상을 꼼꼼하고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일상 옆에 딱 붙어 우리를 괴롭히는 시련과 고난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법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모든 걸 때려치우는 사람 있다. 글 따위 써서 뭐하겠나. 책 읽을 때가 아니지. 지금 이 와중에 영어 공부가 눈에 들어오냐. 다이어트는 이 문제 해결한 다음에 해야지. 공부도 마음 편해야 하는 거지. 뭐 대충 이런 식이다. 일상을 포기할 만큼의 고난과 역경인가. 생각해 볼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살아내라는 말을 "내가 너에게" 전해줄 수는 없다. 비슷한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내가 얼마나 힘든지 네가 알기나 해!"라는 식의 시비가 붙고 감정 상할 수도 있다.
스스로 각성해야 한다. 너무 힘들고 어렵고 막막하니까 그냥 이대로 모든 걸 포기하는 게 낫겠다 판단할 수도 있고, 상황이야 어떠하든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 수도 있다. 포기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나쁘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포기하는 그 사람의 내면에도 현실을 버티고 견디며 한 걸음 나아갈 힘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감옥과 막노동 현장에서 힘든 사람 많이 보았다. 참으로 기구하다 싶은 사람도 많았고, 도대체 어떻게 견뎠을까 도저히 감조차 잡기 힘든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비슷한 말을 했다. "그냥 하루하루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결국은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 자기 삶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란 뜻이다.
"엄마, 나 너무 피곤한데 양치 안 하고 그냥 자면 안 돼?"
나도 자식 키워 본 사람이라 이런 순간의 부모 마음을 잘 안다. 그래, 그냥 자라.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하루쯤인데 뭐 어때. 이렇게 양보하고 싶다. 하지만, 피곤하다는 사실이 양치를 하지 않아도 되는 당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루쯤 양보하고 나면, 앞으로 두 번 세 번 양보하게 된다. 일상이 무너지면 인생도 무너진다. 피곤하고 지친 날이라도 스스로 하기로 결심한 일은 조금이라도 해내야 한다. 차라리 누가 강제한 일이라면, 그냥 혼나고 마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성장과 발전은 자신과 약속한 일 아닌가. 루틴을 설계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악마는 언제나 일상 곁에 붙어 있다. 어떻게든 일상을 무너뜨리기 위해 악을 쓴다. 피곤하고, 머리 아프고, 속상하고, 화가 나고, 잠이 쏟아지고,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고, 회식이 있고, 갑자기 수도가 고장 난다. 이런 일은 늘 있다. 이런 일로 일상이 흔들리면, 죽을 때까지 자신의 하루를 지킬 수 없다.
성공하는 사람은 그럼에도 하루를 지키는 이들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매번 핑계와 변명으로 하루를 포기하는 이들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위대함은 강도가 아니라 꾸준함이요 지속성이다. 단 하루도 빠트리지 않는 지속성이야말로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위대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나는 가진 것도 없었고 특별한 재능도 없었다. 그저 매일,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 것이 전부다. 덕분에 나는 책을 아홉 권 출간했고, 작가를 618명 배출했으며, 글쓰기/책쓰기 분야에서 나름의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 무식할 정도의 지속성. 이것이 나의 최대의 무기다.
악당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어떻게 해야 이 양반의 일상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우리는 매 순간 그런 악당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지켜내야 한다. 나의 일상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하루를 지키는 사람이 인생도 지킬 수 있다.
2024년도 이제 두 달 채 남지 않았다. 하루씩 일상을 지켜나가면, 두 달이란 시간도 엄청난 힘을 갖는다. 25년의 시작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