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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19. 2024

사람은 원래 생의 절반쯤에서 길을 잃곤 한다

그냥, 11월이라서


이윤주 작가의 <고쳐 쓰는 마음>이란 책에 나오는 문장이다. 읽는 순간 밑줄을 긋고 노트에 옮겨 적었다. 지금 나는 오십이 넘었는데, 절반은 조금 더 지났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의 방황이 '그럴 수도 있다'라는 점에 심하게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강한 사람이라고 믿고 살았다. 이후로 나는 유약한 존재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은 태양과 잡초 사이를 오가는 그저 존재하는 존재라고, 다소 철학적인 자아를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강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적에는 쉽게 꺾이고 부러졌다. 유약한 존재라고 믿고 살았더니 자괴감도 심해지고, 사람들이 나를 '공격'한다는 생각에 피해의식도 커졌다. 태양과 잡초 사이를 오가는 존재로서 상황에 따라 필요에 따라 나를 유연하게 변화시키며 살았더니, 사는 건 불편하지 않은데 정체성이 약해졌다.


어떻게 살아도 문제가 생기니까 그냥 기준 정하지 말고 되는 대로 살자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안 될 때 사람은 자포자기 심정을 품게 되는데,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생의 절반 즈음에 이르면 누구나 길을 잃곤 한다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 사람 다 방황하고 상처받고 회의를 느끼는 순간 경험한다는 소리다. 나 말고도 아픈 사람 많다는 소리가 위로와 희망으로 들린다. 내가 나쁜 인간이라 그런가. 


'길을 잃곤 한다'는 서술어가 단호한 종결을 뜻하는 것 같지 않아 다행이었다. 뒤에 이어지는 말이 긍정적일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길을 잃곤 하지만, 어떻게든 다시 방향을 찾아 앞으로 나아간다는, 뭐 그런 스토리. 


발목까지 오는 구두를 선물 받았다. 척추 수술 이후로 운동화만 신었는데, 새 구두를 보니 반갑고 기뻤다. "혹시 허리에 무리가 있을까 걱정 되지만, 그래도 구두 신을 만한 자리가 꽤 있을 것 같아 드립니다." 선물 주는 마음도 감사한데, 나를 배려해주는 마음까지 더해져 감동으로 이어졌다. 


마침 길을 잃어 방황하던 중인데 구두 선물이라니. 이거 신고 다시 힘 내어 길 잘 찾으라는 신호인가. 인생은 때로 아무 일이나 그냥 막 일어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 사람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 또한 이유가 있다. 곧 삼재에 들어서는데, 사람 때문에 힘든 일 생길 거라는 사주가 아주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다. 남들은 이런 얘기 들으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부터 한다는데, 나는 까짓 한 번 부딪쳐 보지 뭐 의기양양하게 배짱을 부렸던 것이다. 


조급한 마음 내려놓기로 했다. 일일이 부딪치겠다는 패기도 접어두기로 했다. 싸워 이겨야 하는 대상은 '그들'이 아니고, 싸워 이기는 것이 삶의 목표도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글을 통해 타인을 돕고,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글 쓰는 삶을 만나도록 이끄는 것인데. 잠시 마음 다쳐 시름하는 동안 '길을 잃고' 말았다. 


길 잃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거다. 열심히 살아온 인생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서 공허할 때도 있을 테고, 들판을 채운 풀의 색깔이 파랑이라며 우기는 사람 때문에 곤혹을 치르는 이도 많을 거다. 


온갖 문제 하나하나 해결해 나아가는 동안 지치고 힘들어서 그냥 주저앉고 싶은 마음 생길 텐데. 나는 그들에게 다시 일어서 힘을 내란 소리를 하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시원한 물 한 잔 권하고 싶다. 한 잔 쭈욱 들이켜고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하늘 쳐다보면서 숨이나 크게 쉬자고. 길은 다시 찾게 될 테니, 지금은 잠시 멈춰 있자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구름 지나가는 걸 바라보기만 하자고. 넋을 잠시 놓자고 말해주고 싶다. 


기어이 싸워서 이기려는 사람 있다. 그래. 너 이겼다고 해라. 난 고만 할란다. 들판의 풀이 초록임이 분명한데, 파랑이라 우기는 너를 설득하고 가르칠 힘이 이제 내게는 없다. 차라리 그냥 파랑이라 치고, 난 잠깐 쉴란다. 그리고, 나 좀 돌볼란다. 


쉴 새 없이 달려왔다. 9년째다. 숱한 사람을 만났다. 온갖 일 다 겪었다. 속이 다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마음고생도 했다. 5년 전에도 여러 사람과 부딪힌 적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상하다. 자신들이 옳고 내가 틀렸다면서 대체 내 강의는 왜 듣는 것인가. 


등에 흙먼지가 묻었다. 머리에 풀이 붙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긋 쳐다본다. 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니고 바람 찬 겨울에 잔디밭에 누워 있으니 이상하다 여기는 모양이다. 괜찮다. 다른 사람 시선 의식할 정도로 멀쩡한 상태였다면 길을 잃지도 않았을 테니. 


피곤하다. 입안에 침이 마른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옷에 묻은 먼지와 풀을 털어낸다. 오후 3시 넘으니까 바람이 조금씩 차가워진다. 겨울 냄새가 난다. 아! 맞다! 지금 11월이지!


순간 기분이 확 맑아진다. 최근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분하고 억울할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저 지금이 11월이기 때문이었다. 매년 11월이면 내게는 안 좋은 일이 생긴다. 지난 삶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과 사고들은 죄다 11월에 일어났다. 그냥 11월이기 때문이다. 


길을 잃은 건 11월이기 때문이었다. 괜히 엉뚱한 우울에 빠져 헤맸다. 11월은 원래 그런 것인데. 열심히 살다 보니 잠시 깜빡했던 거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방향이 분명해졌다. 다시 길을 찾았다. 11월이라서. 그래서 잠시 불행했던 거다. 


어떤 불행의 이유를 '그냥'으로 정의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냥 그런 일이 생기는 거다. 나는 또 그냥 내 할 일을 한다. 그냥 글을 쓴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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