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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24. 2024

무관심이 아니라 심장이 작아서

고통과 불행을 감당하는 힘


2001년 9월 11일. 미국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습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독신자 숙소에 거주하고 있었던 저는, 이른 아침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TV 뉴스로 그 소식을 접했지요. 깜짝 놀랐습니다. 이후로 며칠 몇 달 동안 테러와 폭발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일상을 뒤덮었습니다. 


최근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들은 깜짝 놀랐지만, 아내와 저는 무감각했습니다. 같은 폭발 같은 죽음이었지만, 2001년에는 심장이 벌렁거렸고 지금은 덤덤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공감 능력을 상실한 탓이라고 여겼습니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부모가 큰 수술을 받았다고 하면 저도 모르게 입에서 한숨이 나왔고 함께 걱정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제 부모가 몇 년 전 연달아 큰 수술을 한 뒤부터는 다른 사람 가족 불행한 소식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불행을 감당할 능력이 있다는데요. 그 힘은 한정 되어 있다고 합니다. 비슷한 불행을 계속 접할수록 무감각해지고, 주변에 어떤 일이 생기든 자기 삶을 계속 이어가는 데에 집중하게 된다고. 그래서 세상 곳곳에 온갖 일이 벌어지는데도 우리는 멀쩡하게 아무 일 없듯 일상을 살아가는 거라 합니다. 


사업 실패하고 파산하고 감옥에 다녀왔습니다. 막노동 현장에서 인생 바닥을 경험하고, 암 선고까지 받았습니다. 더 이상은 없겠구나 싶었을 때 장인어른과 장모님 잇달아 떠나보냈습니다. 그 시절 쓰나미는 제가 가진 불행을 견디는 힘 중 대부분을 사용하게 만들었지요. 


아무리 충격적인 소식을 들어도, 자기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힘들고 아파도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기에, 더 이상의 불행을 접한다 하더라도 마치 아무 감정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신경과 척추가 무너져 넉 달 동안 온몸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아팠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 제 주변에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랬구나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자신 또는 가족이 비슷한 고통을 경험한 사람은 제 이야기에 별 반응 보이지 않았고요. 그런 경험 없는 사람은 제 아픔에 무슨 그런 일이 다 있나 입을 쩍 벌린 채 부들부들 떨었던 겁니다. 고통과 불행에 익숙한 사람은 오히려 공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격하게 공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실은, 누구나 자신 혹은 타인의 불행에 같은 마음을 느끼는 것인데요. 다만, 불행을 너무 자주 많이 겪은 사람은 더 이상 감당할 여력이 없어서 심장 밖으로 충격을 내보내는 것뿐입니다. 누군가 나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해서 속상해할 게 아니라, 그 사람 인생에 나 못지않은 상처가 많구나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불행을 감당할 능력이 제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지금껏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어떠한 고통이나 불행도 다 견딜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일정한 양의 고통과 불행을 감당하고 나면, 그 이상의 것들은 가슴에서 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덤덤하게 말이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라고, 젊은 친구들에게 말하면 아주 충격을 받거나 신기하게 듣습니다. 그러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하면 별 반응 보이질 않습니다. 노인들은 이미 자기 삶에서 고통과 불행 충분히 겪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고통과 불행을 감당하지 못하는 탓입니다. 공감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심장이 작아서 다 담을 수가 없는 겁니다. 


누군가 내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한다 해서 무조건 그를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 인생에 어떤 상처와 아픔이 있었는가 관심 가져 주어야 합니다. 내 이야기에 덤덤한 사람일수록 비슷한 크기의 고통을 겪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저 실패했어요!"

"저 파산했어요!"

"저 감옥에 가게 되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종종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저는 "아이고! 어쩌다가! 큰일이네요!"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 시작과 끝이 훤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래요. 어떻게든 잘 이겨낼 겁니다. 힘 내야 합니다."라고 덤덤하게 말합니다. 


자신이 힘들 때는 온 세상이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주고 같이 고통을 분담해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실제로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이어갑니다. 내 아픔과는 별개로, 세상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더 아플 때도 많지요. 


힘들고 어려울 때, 신세한탄 떠벌리고 다닐 필요 없습니다. 그런 행동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인생에서 감당할 만큼의 불행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개인의 심장은 딱 그 만큼의 크기를 가지고 있지요. 그들이 공감 능력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이 아팠기 때문이란 걸 알아야 합니다. 


아주 가끔, 심장의 크기가 남다른 사람도 있습니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 지구의 안전을 위해, 세계 자연과 동물의 보호를 위해, 평생을 바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우리 일반인들과 달리 뇌와 심장의 능력이 큽니다. 불행과 고통을 감당할 힘이 더 크기 때문에 세상과 인생도 더 크게 보는 것이죠. 


우리도 아주 조금은 심장의 크기를 키울 수 있습니다. 남의 아픔과 상처에 공감하고, 그것을 자신의 일처럼 여길 만큼 마음을 키우는 것이죠. 그 방법은 단연코 독서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직접 겪지 못한 불행과 극복의 이야기를 접합니다. "깜짝 놀라는" 공감이 아니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공감하고, 그 아픔을 나누는 것은 중요한 태도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고통과 불행을 겪더라도 다시 새로운 삶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신이 우리 심장을 작게 만든 이유가 바로 이러한 법칙 때문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불행은 떠벌리지 말고, 타인의 고통에는 귀를 기울여주는, 그러면서도 주어진 삶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태도가 인생을 빛나게 만들어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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