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니라 어머니입니다
허리 괜찮으냐?
네 방 침대 매트리스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제 나이 50이 코앞입니다. 매트리스에 문제가 있거나 허리가 아프면 알아서 처신할 문제겠지요. 여든이 다 된 어머니가 쉰 아들의 잠자리 걱정을 하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제발 쓸데없는 걱정 좀 하지 마시라고, 불편한 답변을 돌려드리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갈비탕을 끓였습니다. 누가 봐도 훈이 국그릇에 고기가 가장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세상 근심 다 안은 표정으로 말씀하셨지요.
"훈이한테 고기 주거라. 훈이가 많이 먹어야 한다. 한창 클 나이인데."
185센티미터인데 뭘 더 커.
아빠와 엄마가 곁에서 딱 지키고 있는데, 할머니가 자꾸만 부족한 듯 염려를 하니까 그것도 거슬립니다. 마치 저와 아내가 아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요.
맛있는 반찬을 전부 모아 손주 앞에 갖다 모으는 것도 지나친 애착입니다.
어머니 품에서 자랐습니다. 직장 생활 하셨기 때문에 평일 낮에는 함께 할 수 없었지요. 때문에, 해가 지면 곁에 붙어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숨소리, 어머니의 습관, 어머니의 말투,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지요.
시장에 가실 때도 손 꼭 붙잡고 따라다녔고, 어디 볼 일 보러 가실 때도 무조건 따라나섰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참 편안한 존재였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후, 모든 것을 잃고 인생을 정리했습니다. 감옥에 가야 했고, 아내와 아들은 어머니 품에 맡겨야 했습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둘 정리하고, 결국 맨 마지막에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저 망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오열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저는 또 한 번 무너지고 말았지요.
끝까지 미뤘습니다. 누군가 어머니한테 대신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제 입으로 제가 망했다는 소리는 차마 할 수가 없었지요.
어머니는 저한테 참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어머니의 모든 말과 행동이 제게 전부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모든 말과 행동이 거슬리는 때도 있었고요.
눈앞에서는 모진 말 서슴없이 뱉아내고, 돌아서서 눈물을 삼킵니다.
고백하면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실 것만 같은 존재이자, 고백하기 가장 어려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엄마와 아들. 부모와 자식. 편안하고도 어려운 관계인 듯합니다.
그럼에도 어머니 생각을 하면 가장 먼저 눈시울부터 뜨거워집니다.
자식 위해 평생을 바친 당신의 삶에서 헌신과 희생이라는 말을 배웁니다. 제가 잘하면 모두가 제 잘난 덕이고, 제가 못하면 모두가 어머니 당신 탓이었지요.
세월이 흐르면,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보는 나쁜 습성이 생기나 봅니다. 적어도 아들 입장에서는 말이지요.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이름만으로 이해와 합리와 도덕과 득실과 시비를 따질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살았나 봅니다.
내가 잘 되기만 하면 어머니도 마냥 좋아하실 거란 생각에, 지금껏 제 몫만 좇으며 살았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저는 '나아가는 삶'을 멈추지 못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은 결심 하나 해 봅니다. 어머니를 '사람'이 아닌 '어머니'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매트리스를 바꿔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네 어머니 바꾸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손주 그릇에 고기 더 넣으라고 하면, 네 어머니 고기 더 넣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맛있는 반찬 그릇 손주 앞으로 당겨 놓으시면, 다른 그릇에 어머니 반찬 조금 더 담겠습니다.
뭐가 그리 잘나서. 뭐가 그리 정정당당해서. 세상 그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어머니한테 옳고 그름을 따지려 했을까요.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입니다. 어머니한테 제가, 그냥 아들이듯이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