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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25. 2024

어머니는 기어이 김장을 담으려 하신다

내 안의 모순과 갈등


김장 담는 게 싫습니다. 집에서 무슨 일을 크게 벌이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손도 많이 가고, 할 일도 많고, 힘도 써야 하고, 뒷정리도 골치 아픕니다. 요즘은 돈 주고 사먹는 김치도 제법 맛있고, 또 몸에 좋은 신선한 재료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문해서 사먹어도 얼마든지 될 일을, 굳이 직접 집에서 담그려 하니 어찌 말려야 할까요. 


저는 김치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합니다. 우리집에서 김치 제일 많이 먹는 사람이 저입니다. 어릴 적부터 김치를 좋아했습니다. 김치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웠지요. 외할머니는 그런 저를 보면서 신통방통하다며 머리를 만지곤 하셨지요. 


"절인 배추 살 필요없다. 내가 직접 절이면 된다. 우리 식구 입맛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매천시장에 가서 배추랑 무우만 사가지고 오면 내가 다 알아서 살 테니 아무 염려 말거라."


김치를 제일 좋아하면서도 김장 담그는 건 싫다 하니, 제 안에서 두 친구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저라는 사람의 모순이기도 하지요. 좋아하는 김치를 어머니께서 손수 담궈 주신다는데 좋아해야 할 일이지 왜 이리 심통을 부리는 걸까요. 


첫째, 어머니는 고된 일을 하기만 하면 짜증을 부립니다. 아마 이번 김장도 다 끝내고 나면 며칠간 툴툴거리실 게 뻔합니다. 차라리 돈 주고 사 먹는 게 가족 평화를 위해 좋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둘째, "내가 다 알아서 한다"라고 말씀하시지만, 실제로는 저와 아내와 아버지가 모두 힘을 합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어머니 몸 불편하신 건 온 가족이 다 아는 사실인데 대체 뭘 어떻게 알아서 하신다는 말씀인가요. 결국 가족 다 힘을 합해야 가능한 김장인데, 자꾸 말씀만 고집을 부리시니 그게 못마땅한 겁니다.


셋째, 어머니는 손수 음식을 만들고 나면 항상 당신이 만든 음식에 불평과 불만을 쏟아냅니다. 습관입니다. 이번에 김치 담그면 또 분명히 쓴소리 계속 하실 겁니다. 짜다, 싱겁다, 맛이 별로다, 젓갈을 잘못 썼다, 배추가 별로다, 배를 덜 넣었다, 산초가루를 괜히 넣었다...... 밥 먹을 때마다 그런 투덜거림을 들어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입니다. 


넷째, 무엇보다 제가 그런 일을 하기가 싫습니다. 글 쓰고 책 읽고 강의자료 만들고 강의하고. 제 업이라 할 만한 일이 따로 있는데, 자꾸만 집안일을 거들어야 하니 짜증이 나는 것이죠. 집에서 노는 사람도 아니고, 매일 할 일이 있는데 따로 날을 비워서 김치를 담으려 하니 속이 상한 겁니다. 


다섯째,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글 이유가 없는 겁니다. 세상이 바뀌었으면 생각도 바뀌는 게 마땅합니다. 가족 위해 손수 김치를 담근다는 생각 하나가 온가족 고생 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조금만이라도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이번 주에 시장 가서 배추와 김치를 산더미처럼 사가지고 와야 할 겁니다. 이번 겨울이 춥지 않아 다들 김장 늦게 담는다 하는데, 그래서 조금 늦긴 했지만 이번 주에 시장 가면 김장배추와 무우가 잔뜩 쌓여 있을 것으로 짐작 됩니다. 


어머니는 아이처럼 설렙니다. 김장 담는 날을 기다리고 기대하면서 요즘은 매일 목소리도 들뜨고 잘 웃기도 합니다. 표정 밝습니다. 식구들 지내기 편합니다. 이 평화가 김장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마음을 이해하고, 기쁜 마음으로 김장 담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은데요. 그러자니 거짓말 쓰는 것 같아 마음 불편합니다. 있는 그대로 쓰겠습니다. 저는 김장 담는 게 싫습니다. 일이 많고 번거롭습니다. 그냥 사 먹으면 좋겠습니다. 간편하고, 맛도 좋고, 먹을 만큼 계속 주문할 수 있으니 보관도 편리합니다. 


김치를 좋아하면서도 김장 담는 건 싫은, 그런 제 마음 모순과 갈등을 아직도 설명하기 힘듭니다. 언젠가 어머니 손맛을 그리워하게 될 날 오겠지요. 김치뿐만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세상과 인생에 대한 모순과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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