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면 똥 됩니다
여자 친구가 곁에 앉아 있습니다. 바람에 머릿결이 날리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깁니다. 나를 바라보며 한 번 스윽 웃고, 다시 고개를 돌려 먼 바다를 바라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 말을 삼킵니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우리 모두 무슨 생각을 할까요? "으이구! 바보 같은! 빨리 말해! 사랑한다고 어서 말하라고!" 답답해 할 겁니다. 속에 천불이 난다고 할 테지요. 사랑한다는 한 마디를 하지 못해서 어쩌면 여자 친구가 떠날지도 모릅니다. 화면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남자의 멱살을 잡고서라도 "빨리 지금 말해!"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지금 해야 합니다. 그 한 마디를 삼키고 미루고 놓치는 바람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낼 수는 없습니다. 아름다운 말은 지금 해야 합니다. 소중한 신호는 지금 보내야 합니다. 언젠가, 나중에 라는 말은 인생에서 지워야 합니다.
책을 읽다가, 친구를 만나 대화 나누다가, 잠을 청하려고 누웠다가, 문득 어떤 문장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제목인 경우도 있고, 마지막 메시지인 경우도 있고, 한 편의 글 시작하는 대목일 수도 있습니다.
'이거 참 괜찮네. 다음에 꼭 써먹어야지!'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을 바로 쓰지 않고 미루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을 지금 하지 않고 나중으로 미루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너무 멋진 문장이나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나중에 책 집필할 때나 좋은 기회 있을 때 써먹어야지 결심하는 사람 있는데요. "나중에 제대로 써먹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잊어버리거나,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거나, 그래서 그냥 희미하게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재고 벼르고 따지고 분석하고 기다리고 미루는" 행위는 글쓰기에 있어 쥐약입니다. 우리가 무슨 노벨 문학상 받을 만한 수준의 전업 작가도 아니고, 이제 연습하고 훈련하고 시작하는 초보 작가인데, 자꾸만 '작품'을 쓰려는 마음 가지면 곤란하지요. 글은 쓰지 않고 바람만 풍선 만큼 커지는 속 빈 강정이 되고 마는 겁니다.
생각 나면 써야 합니다. 떠오르면 써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어도 써야 합니다. 키보드에 손을 얹고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마구 적다 보면,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문장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쓰면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초보 작가의 경우, 쓰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한 편의 글도 완성할 수 없고, 책은 가당치도 않고, 글쓰기 실력도 향상시킬 수 없습니다. 많은 초보 작가가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완성한 다음 글을 쓰려고 하는데요. 머릿속으로는 완성할 수도 없고, 설령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하더라도 실제 쓰는 행위는 또 다른 분야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낄수록 똥 됩니다. 순간 떠오르는 좋은 문장이나 아이디어도 아끼고 미룰수록 쓸모가 없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글 쓰는 사람은 문장이나 아이디어 떠오르면 즉시 적어야 합니다. 아껴두지 말고 지금!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