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감정이 좋은 인생을 만든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단연코 "예스!"입니다. 오래 전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 저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인상을 찡그리고 한숨을 내뱉으며 기분 나쁜 상태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피곤하고 지치고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사업 실패하고 감옥에 갔을 때, 그러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제 인생 최악의 순간에 저는 감정을 달리 선택했습니다. 아침에 기상 신호가 들리면 눈을 뜨자마자 웃었습니다.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하루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요.
네, 맞습니다. 저는 감옥에서 '즐거운 감정'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서 즐거운 감정 품어 봐야 달라질 게 뭐가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밖'은 변하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 '안'은 전혀 다른 상태가 되었지요. 고통과 후회와 분노로 하루하루 보내던 저는, 이후로 기쁨과 성공과 행복을 자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감정을 선택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었다면, 감옥에 있었으니 어쩔 수 없이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만 느꼈을 겁니다. 저뿐만 아닙니다. 수많은 이들이 자기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들도 저와 같이 "상황이 이러하니 나쁜 감정 드는 게 당연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이란 것이 외부에서 발생하는 일로부터 결정되는 거라고 믿는 거지요. 전혀 아닙니다. 감정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감정이 외부 사건이나 상황 또는 환경으로부터 결정되는 것이라면, 같은 사건 같은 상황 같은 환경에 처한 사람은 모두 똑같은 감정을 느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슷한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곤 하지요.
감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인생 변화와 성장이 시작됩니다. 감정을 선택하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한가 하면요. 감정에 따라 우리 신체 생리 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기쁘고 행복한 감정을 많이 느낄수록 의욕과 활력 넘치며 따라서 열정도 뜨거워지게 마련입니다.
우울한 표정으로 한숨 푹푹 내쉬는 사람과 함께 있어 본 적 있지요? 저는 그런 사람들과 상종도 하지 않습니다. 제가 가진 에너지까지 싹 다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반면, 즐겁고 유쾌하고 밝고 긍정적인 사람과는 종일 붙어 있어도 지겹지 않습니다. 충전 팍팍 됩니다. 그들 덕분에 제 인생도 마냥 즐거워지는 듯합니다.
감정은 입맛도 좌우합니다. 감정은 수면의 질도 결정합니다. 감정에 따라 일의 효율도 달라집니다. 어떤 감정을 자주 느끼느냐에 따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수준도 정해집니다.
아무리 실력 좋고 학벌 좋고 돈 많이 버는 사람이라도, 매일 매 순간 짜증 내고 화 내고 툴툴거린다면 누가 곁에 있고 싶어 하겠습니까. 다소 부족하고 불완전한 사람이라도 늘 밝게 웃고 즐겁게 생활하고 환한 에너지 뿜어낸다면 저절로 사랑하게 되겠지요.
하루만 돌아봐도 온갖 일 다 생깁니다. 외부 환경이나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감정이 결정되는 거라면, 어쩌면 우리 모두는 종일 웃을 일 하나 없는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감정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겠다 결단 내리면, 그 때부터 행복할 수 있습니다. 환하게 웃겠다 결단하면, 그 때부터 환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내 인생 멋지게 펼쳐질 것을 떠올리며 기쁜 마음 유지하겠다 작정하면, 이전과는 다른 웃음과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휩쓸리는 순간 끝입니다. 상황에 휩쓸리고, 사건에 휩쓸리고, 사람들 말에 휩쓸리고, 그렇게 외부 환경에 휩쓸리기 시작하면 얼굴에 시커먼 그림자 드리운 채 평생 살아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웃어야 합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웃어야 합니다.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웃어야 하고, 누군가 공격적인 말로 상처를 줄 때 웃어야 합니다. 매 순간 '내 감정은 내가 선택한다! 누구도 내 감정을 좌우할 수 없다!'라는 각오와 결단을 내리며 살아야 합니다.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신경과 척추에 원인모를 이상이 생겨 온몸에 극심한 통증 느꼈습니다. 병원 다니면서 치료 받았는데도 낫질 않아서, 하루 견디는 게 지옥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습관적으로 "죽고 싶다, 죽겠다, 죽을 지경이다"라는 말을 뱉았습니다.
아프니까 그럴 수도 있지.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얼마나 후회 막심한지 말도 못합니다. 사람이 많이 아프면 힘들고 괴롭지요. 그럴 땐 그냥 아프다고만 해야 합니다. 아프니까, 아프다고 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겠다"라는 말은 당사자가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아프다는 말과 죽겠다는 말은 전혀 다른 차원의 주문입니다. 스스로 어떤 최면을 걸고 어떤 감정으로 살아갈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2024년에는 몸도 마음도 '고통스러운' 날 많았습니다. 저는 이 표현을 바꾸려 합니다. 2024년에는 '별일' 다 있었다 라고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감정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말과 글 표현을 바꾸는 게 먼저입니다. 완곡한 표현, 정제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격한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것이지요.
다양한 방법을 찾아서라도 자기 감정을 밝고 긍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인생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식으로 대충 여기면 노력은 노력 대로 하면서도 삶이 좋아지지 않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겁니다.
감정은 인간만이 느끼는 독특한 마음 상태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감정을 선물한 것은 다 이유가 있을 테지요. 바로 이 감정이 우리 인생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란 뜻입니다.
내일 아침부터, 아니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최상의 감정 상태를 선택하겠다 결단하시길 바랍니다. 한 달만 지속해도 전에 없던 일상을 만나게 될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