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고 소중한 존재
설 이틀 전에 제사다. 똑같은 음식을, 그 난리를 두 번 피워야 한다. 조상 모시는 준비를 '난리'라고 표현해서야 되겠느냐고 꾸짖는 사람 있다면, 그는 분명 동그랑땡 한 번 부쳐 보지 않은 사람이리라.
작년 5월, 신경과 척추에 상당한 문제가 발생하여 수술과 시술 번갈아 하고 이제 겨우 숨 좀 쉴 만해졌다.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제사 음식을 전문 업체에 맡겨 주문 배송하자고 아버지께 건의하였고, 생각보다 수월하게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큰 양보다. 자식 며느리 생각하는 마음이 평생의 고집을 내려놓게 만든 것일 터다. 기분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버지 마음 서운하실 것 같아 신경 쓰인다. 더 기꺼운 마음으로 제사 모시고, 아버지께도 잘하자고 아내와 뜻을 맞췄다.
밤 10시까지 온라인 독서모임 운영하고 집에 와서 곧장 제사 준비에 돌입했다. 장롱 위 병풍을 꺼내 먼지 닦고, 제사 때만 쓰는 자리도 꺼내 펼쳐 깔았다. 상 두 개를 창고에서 꺼내 깨끗이 닦았다. 제기를 모두 꺼내 식탁 위에 올려두고, 제사 음식을 담아 올리기 시작했다.
밤 11시 넘어 현관 앞에 나가 꾸벅 절을 하고는 조상님 모셔왔다. 여든 다섯 아버지는 무릎 한 번 굽히기조차 힘든 상황인데도 몇 번을 술을 따라 올리고 두 번씩 꼬박 절을 하였다. 축문을 읽고, 길게 읍하고, 마무리 잔을 치고 절 올려 제사를 모두 끝냈다.
어머니와 아내도 절을 하긴 했으나, 아버지와 내가 절 올린 것에 비하면 그저 형식적인 모양새에 불과했다. 제사에 들이는 정성은 어머니와 아내가 훨씬 큰데, 사람도 없이 상차림 앞에서 '절'이라고 하는 행위를 하려니 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게 두 사람 생각이다.
상 다 치우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 방에 들어와 누우니 새벽 1시가 다 되었다. 5시에 일어나니까, 네 시간밖에 못 자는 거다. 피곤이 몰려왔다. 사람 욕심 끝이 없다고, 제사 음식 다 주문해서 지내놓고도 또 피곤하단 말이 나온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불편한 피드가 하나 올라왔다. "남편을 팝니다"라는 제목의 글. 우스갯소리로 올린 내용이겠지만 읽는 내내 영 마음이 불편했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계속 신경이 쓰인다. 말도 안 듣고 애만 먹이는 형편없는 남편을 판다는 말.
그 아래 댓글은 더 가관이다. "이런 걸 누가 사느냐, 나도 집에 하나 있어서 덧정 없다, 그냥 버려라" 등등. 아무리 재미삼아 올린 글이라 하더라도 선을 넘은 게 분명했다. 요즘은 개새끼도 함부로 욕하거나 내려까는 소리 못하는 세상인데. 남편이 미우면 그냥 속상하다는 얘기 정도만 올리고 말 일이지.
아버지는 고생 많이 하셨다. 어머니 입장에서야 잔소리 넘칠 만큼 속상한 일 많았겠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 바닥에서부터 일으켜 먹고 살 만큼 만들어주신 분이다. 형편 나아지고 나서야 돌아가신 부모 생각 간절하여 제사에 온 정성 기울였던 것.
다만, 부엌일 아예 모르셔서 궂은 일 도맡아 하는 일손의 힘겨움을 짐작 못하시는 게 문제일 뿐이었다. 고지식한 옛날 사람인데도 자식 며느리 부탁 차마 거절 못하고 음식을 주문해서 제사 지내는 걸로 결정해 주셨으니 그 마음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툭닥거리고 지지고 볶으면서 속 끓일 수 있다. 사람이 열흘만 붙어 있어도 징징거리게 마련인데, 수십 년 한 공간에서 살아온 가족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럼에도 내게 무슨 일 생기면 가장 먼저 뛰어오는 것이 가족이고, 마음 다해 염려해주는 것도 가족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날이 밝았다. 아침 6시 30분부터 약 30분간 미니특강 진행하였다. 간밤에 잠을 설쳐 피곤했지만, 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있다는 생각이 힘 나게 해준다. 가족, 그리고 함께 하는 이들. 나를 응원해주고 나를 믿어주고 내 존재 가치를 높여주는 사람들. 귀하고 소중하다. 농담도 선 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