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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또 그곳에 갔다

가마 속에 앉은 새색시처럼

by 글장이


"이번 주 일요일에 한 번 다녀오면 안 되겠냐."

아침 식사를 하던 중에 마치 내게 허락을 받듯이 어머니는 내게 물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2년 전에 거기 가셨다가 넘어져서 골반 다 부서지고 큰 수술 받고 지금 그렇게 다리 절뚝거리며 사는 모습에 제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거기가 어디라고 또 가시겠다는 겁니까!"


나는 그 말을 차마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 봉투에 50만원을 담아 어머니께 건넸다. 그래도 명색이 절인데, 빈손으로 갈 수 없을 테니 가족 이름으로 시주라도 하고 오시라고. 어머니는 자식에게 두 손으로 봉투를 받으면서 연신 고맙다 인사를 했다.


고모부가 차를 몰고 집앞으로 왔다. 어머니는 힘겹게 차에 올랐다.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인사를 건네는 고모부에게 따로 차비를 드렸다. 어머니 좀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그렇게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며 저녁이면 돌아올 어머니를 어디 멀리 떠나보내는 사람처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4남 1녀 중 막내딸이다. 그 시절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어머니는 외가에서 늘 구박덩어리였다. 그러다 어느 날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답답하고 구박만 받던 집구석에서 떠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한다.


멀리까지 시집가기 위해 가마에 올라 앉았다. 난생 처음 받아 보는 황홀한 대접에 입에 귀에 걸렸다고. 가마 옆 작은 창을 열고 할머니가 손주딸에게 들꽃 한다발을 건넸다고 한다. "얘야, 잘 가거라. 몸조심하고."


한창 들뜬 어머니는 들꽃 따위가 다 뭐냐는 식으로 옆자리에 팽개치고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마치 여행 떠나듯 시집을 갔다. 새신랑이 살고 있는 낯선 땅 어귀에 이르렀을 무렵, 답답한 마음에 가마 창을 열고 바깥 공기를 쐬는데 저 멀리 끝도 없이 펼쳐진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하얗고 노랑 들꽃들을 보는 순간, 그제야 어머니는 당신이 영원히 집을 떠나오게 되었음을 실감했다고. 가마 안에서 새신부는 펑펑 울기 시작했단다.


외가 가족은 이제 어머니와 남동생 둘만 살아 있다. 모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 고향에는 핏줄 섞인 이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충북 단양에 살고 있는 먼 친척은 작은 암자를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몇 년 전부터 거기를 친정집 드나들듯 다니시는 거다.


2년 전에 혼자 가서 며칠을 묵겠다 하여 고심 끝에 허락해 드렸더니, 한밤중에 화장실 가려고 일어서다 넘어져 골반뼈를 아주 박살을 내어 돌아오셨다. 입원하고 수술하고, 당시 코로나 상황으로 온갖 불편함 다 겪으며 간신히 회복했다. 그런 곳을 오늘 또 간다 하니 내 속이 오죽했겠는가.


충북 단양 작은 암자 주변에는 한없이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사계절 내내 종류별로 꽃이 지지 않고, 하늘은 푸르고 높았으며, 전국 각지에서 그 앞을 흐르는 물을 보러 찾아든다. 어쩌면 어머니는 암자 앞에 펼쳐진 들판에서 할머니와 친정을 보는 것일지도. 철없이 가마에 올라 인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떠나온 고향을, 여든 넘어 다시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업 실패하고 전재산 다 날린 채 야밤도주하듯 대구로 내려왔다. 나는 당시 일산에 살고 있었는데, 내 힘으로 번 돈을 가지고 대출 한 푼 없이 마흔 평 아파트를 장만했었다. 더 없이 귀하고 아꼈던 내 집을 채권자들에게 홀라당 빼앗긴 채, 그 집에게 인사 한 번 하지 못하고 도망을 쳤던 것이다.


언젠가 꼭 한 번 다시 찾아가 그 시절 철없던 내가 인사 한 번 건네지 못하고 도망쳐서 미안했었다는 말을 그 집에게 꼭 전하고 싶다.


공간, 가족, 그리고 사람들. 인생이란 끝도 없이 인연을 맺어가고 또 어느 순간 그 연을 끊으며 살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누군가를 만날 땐 재고 따지고 분석하며 나에게 도움 되는 존재인가 평가를 하고. 대책 없이 헤어질 땐 지난 날 아쉬움으로 두 손을 마주잡기도 한다.


언젠가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닥쳤을 때, 그 모든 순간을 애타게 그리워하면서 "미안하다, 아쉬웠다"는 말을 중얼거리겠지. 만나는 순간에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함께 있는 동안에는 어쩜 그리 상대의 못난 점만 눈에 띄는지.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눈물이 흐르는 건 사람이 참으로 어리석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 아니겠는가.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가고 있다고. 도착하면 다시 전화하겠다고. 그 들뜬 목소리가 마치 시집 가는 가마 속 어린 새색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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