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 온전히 집중하는 태도
스무 살.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내 인생 더 이상 불행은 없을 거라고,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그리 생각했었다. 그런 내가 입시에 떨어져 1년을 더 학원에 박혀 공부해야 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재수끝에 들어간 대학에서 나는 매일 술을 마시고 당구를 쳤다.
내가 생각했던 이십 대의 근사한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아직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거란 기대로 하루하루 지냈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서른이 되면 달라질 거야.
나의 삼십 대는 넥타이와 양복이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출근했고 한밤중에 퇴근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내 가슴에 꽂혀 있는 대기업 배지를 보며 부러워한다는 사실이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멋지고 안정되고 품위 있는 삼십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다시 마흔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마흔. 그렇다. 마흔이었다. 내 삶이 절벽으로 떨어진 순간. 가까스로 버티고 견디며 온몸이 상처 투성이가 되었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외치며 절벽을 기어올랐다. 수감 생활을 끝내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 막노동을 하면서 글 쓰고 책 읽었다. 간신히 다시 자리를 잡고 지금까지 [자이언트 북 컨설팅]이라는 자기계발 일인기업을 운영중이다.
그러면서 나는 오십을 바라보았다. 스무 살도, 서른도, 마흔도 아니라면, 적어도 오십쯤 되면 뭔가 달라도 한참 달라지지 않을까. 그 때 즈음이면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삶을 누리고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 오십대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초조하고 뭔가 불완전하다는 생각 지울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과거에 비해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하고 평온하다 말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럼에도 지금 당장 삶을 끝내게 된다면 아쉬운 게 너무 많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다시 예순을 바라본다.
인생은 이런 거다. 늘 '언젠가'를 바라본다. 그리고 '지금'은 흔들린다. 인생 절반쯤 살고 나서야 깨달았다. 흔들리는 지금 위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서 있는 그 자체가 내게 주어진 삶이라는 것을. 하여, 불안하고 초조하다는 생각보다는 그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춤을 추듯 사는 것이 감사이고 만족이며 행복임을 알게 된 것이다.
저 멀리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은 생각 지울 수 없겠지만, 그런 신기루를 향해 질주하느라 오늘과 지금을 불행과 불안으로 '흘려보내게' 된다면 매 순간 후회만 남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생각을 달리 하기로 했다. 나는 더 이상 예순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십대를 내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올 한 해를 가장 행복한 날들로, 오늘과 지금을 더 없는 시간으로. 그렇게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온마음으로 품으려 한다.
아프고 힘든 순간 많았다. 지금도 이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내일을 바라보며 오늘을 흘려보내지 않을 거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에 가장 행복하고 충만한 때임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받아들여야지.
미래만 바라보고 기대하는 사람의 경우 오늘과 지금이 불행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 저 멀리 이상적인 나와 내 인생이 멋지게 서 있으니 오늘과 지금의 내 모습은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부족하게 느껴질 수밖에. 그러니 열심히 살면서도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저절로 한숨을 만들어내는 거다.
오늘도 좋고 지금도 감사하지만, 더 나은 인생으로 확장해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무슨 하자가 있는 불량품이 아니다. 잘못되었기 때문에 노력하는 게 아니라 이미 충분하지만 '존재 확장'을 위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매 순간 충만할 수 있다.
먼 곳만 바라보며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던 나의 스무 살부터 마흔까지를 돌이킬 때마다 마음이 씁쓸하다. 허나, 이 또한 지금을 누리지 못한 채 과거만 돌아보며 후회하는 태도라서 금세 머리를 흔든다. 지금! 오직 지금뿐이다.
나는 지금 사무실에 홀로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열어둔 창문으로 아침 찬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3월 책쓰기 정규과정을 시작한다. 새로 만든 자료를 화면에 띄워 놓고 리허설을 마쳤다. 나는 작가로서, 그리고 강사로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걱정 근심도 있고, 상처 입은 마음도 여전하며,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공존한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 모든 게 다 존재하는 내가 있는 그대로의 진짜 나란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인다.
카페인 음료를 마시며 의자를 뒤로 젖혀 크게 심호흡을 한다. 이제 사무실에 보일러를 그만 틀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