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심장을 보다
제가 잘 아는 어느 강사님은 "멋지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수강생들도 그를 보며 "멋지다!"고 하고, 주변 사람들도 그를 보면 "멋지다!"고 말합니다. 저와 나이도 비슷하고 하는 일도 강사로 같은데, 그는 "멋지다!"는 말을 거의 매일 듣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간 강사로 일하면서 참으로 따뜻하고 귀한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곱씹어 봐도 "멋지다!"는 말을 대놓고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이 말이 오늘따라 왜 그리도 부러운지요.
"멋지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그 뜻이 "아주 멋있다"로 나와 있네요. 그냥 멋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멋있다니, 참으로 멋진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저는 "멋지지 않다"는 뜻입니다. 사실 뭐 그렇게 멋지지 않아도 아무 상관은 없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글쓰기/책쓰기 강의이고 집필인데 굳이 멋까지 있을 필요 뭐 있겠습니까. 제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그냥 생긴 대로 살면 되지요.
머리숱이 별로 없습니다. 개고생하면서 살았던 적 있는데, 아마도 그때 머리 다 빠진 모양입니다. 거울을 보니 눈가에 주름이 가득하고 눈 아래가 축 처져 누가 봐도 나이 오십 훌쩍 넘은 아저씨가 분명합니다.
저는 옷도 썩 잘 입는 편이 못 됩니다. 그냥 셔츠에 청바지가 전부입니다. 어쩌다가 체크무늬 옷을 입으면 영 어울리지도 않고, 오히려 더 아저씨 같아 보여서 그냥 민무늬 셔츠만 입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고 로션 바르고 머리 말리는 데 10분 걸립니다. 멋 부릴 것도 없고, 멋 부린다 하여 달라질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외모에 신경 하나도 쓰지 않은 채, 그저 삶의 한가운데에서 시련과 고난 극복하느라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좀 살 만해서 거울 앞에 섰는데, 이렇게 훌쩍 늙어버린 아저씨가 제 앞에 서 있네요.
사춘기 시절에도 잘 생기고 싶다는 욕구가 없었던 저인데, 왜 이제 와서, 이렇게 다 늙어서 멋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겉모습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자꾸만 거울 앞에 서는 저를 보면서 조금은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나이 오십을 넘긴 제 친구들. 이제 중년이란 말도 한참 찐해진 친구들과 함께 모이면 늘 나이와 건강과 외모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씩 하는 친구들 입에는 마지막에 꼭 한숨이 따라붙습니다.
저희보다 더 오랜 세월을 거친 사람들 입장에서는 오십이면 한창이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마흔과는 또 다른 게 오십인 듯합니다. 이런 저의 얘기를 듣는 사람 중에는 "갱년기라 그렇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도 없지 않을 겁니다. 원래 당사자만 심각한 거니까요.
멋지다는 말.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별 것 없는 형식적인 멘트 같기도 하고요. 또 다르게 보면 대체 어떻게 해야 저 멋지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하지요.
혹시, 저와 비슷한, 그러니까 멋지다는 말 들어 본 적 가물가물한 사람 있다면 꼭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당신은 멋집니다! 아니, 너무너무 멋집니다!" 누군가로부터 이 말을 듣기 위해 애쓰지 마세요. 이 말은 내가 나에게 해 줄 때가 가장 의미 있고 가치롭습니다.
멋지게 살아갈 겁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누가 얼마나 멋지게 보일런지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제가 제일 멋집니다. 자뻑이라 해도 좋고, 재수없다 해도 좋습니다. 다시 거울 앞에 섭니다. 네, 맞습니다. 제가 이전까지 잘못 봤네요. 저는 참말로 멋집니다!
살다 보면, 무언가에 뒤집어 씌여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먹고 살 만해지니까 제가 잠시 겉멋에 욕심이 생겼었나 봅니다. 원래부터 멋진 이은대를 잊어버린 채, 그 위에 멋진 치장을 부릴려고 했네요. 가슴속 심장이 가장 멋진 나! 두 번 다시 잊지 않을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