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
외삼촌이 돌아가셨습니다. 향년 82세. 어머니한테는 둘째 오빠입니다. 형제자매 중에서 둘이 가장 친했다 합니다. 소식을 듣는 순간 어머니는 오열하셨지요.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향했고, 영정 사진 앞에서 어머니는 다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마침 아버지는 울릉도 여행중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고도 어쩔 도리가 없었지요. 다행히 발인 하루 전, 밤 늦게 대구에 도착해서 저와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이틀 동안 문상객이 모두 다녀갔고, 아직은 코로나 때문에 오랜 시간 상가를 지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밤 11시 30분. 장례식장에는 아버지와 저 두 사람만 앉아 있었습니다. 상주인 사촌 형님이 우리 두 사람 앞에 마주 앉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외숙모와 사촌 누나도 함께 나와 아버지를 접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숙모와 사촌 누나는 들어갈 때 한 번, 나올 때 한 번, 달랑 인사만 할 뿐이었지요.
속상했습니다. 아버지 연세도 여든이 넘었지요. 여행 다녀오시는 길이라 피곤하고 지쳤음에도 외삼촌 가시는 길에 인사해야 한다면 늦은 밤 한걸음에 달려왔는데, 아무리 경황이 없다 하더라도 이렇게 아버지를 홀대하는가 싶어 서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파트 경비실에는 경비 아저씨가 열 분쯤 계십니다. 다들 자기 맡은 바 일 열심히 하고, 주민들한테도 친절하게 잘 하십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마음에 걸립니다. 저는 하루에 열 번 만나면 열 번 다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넵니다. 제가 아무리 인사를 크게 해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는 경비 아저씨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 못 들었나 싶어 그냥 넘기곤 했지요. 하지만 여러 해 시간을 보내면서, 인사 자체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입주민과 경비라는 각자의 입장을 떠나서라도, 사람이 인사를 하면 웃으며 받아주는 것이 마땅한 예의겠지요.
세상에 완벽한 작가, 완벽한 강사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 작가와 강사는 있을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한 명의 독자라도 더 돕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저를 믿고 함께 한 수강생들에게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주기 위해 강의합니다.
때로 서운한 감정 생길 때도 있습니다. 이토록 좋은 마음으로 열심히 글을 썼는데, 왜 이리도 삐딱한 마음으로 비방과 험담을 일삼는 것일까? 도움이 되지 않았을지언정, 내가 무슨 해를 입힌 것은 아니지 않는가? 강의하는 스타일이 개인마다 다를 뿐, 나쁜 마음 품고 강의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토록 부정적인 심보로 뒷말을 하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계속 내 책을 읽고 내 강의를 듣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밤 12시가 넘어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상태에서 아버지한테 말씀드렸지요. 그래도 사람이 기본 예의는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상주가 문상객을 이리도 홀대하는가 투덜거렸습니다.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내 마음 같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냥 우리가 할 몫만 다하면 그 뿐이야."
상주에게 뭔가 바라고 갔던 문상이 아닙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안녕을 고하고자 갔던 것이지요. 경비 아저씨의 달가운 반응을 보기 위해 인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인사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에 인사하는 것이지요. 독자의 반응 때문에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내가 그들을 돕겠다는 마음, 오직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수강생들의 칭찬과 인정 때문에 강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글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그것 뿐입니다.
A를 주면 B가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합니다. 당연하다 생각하지요. 바로 이 심리 때문에 우리는 상처를 입고 실망을 하고 마음을 다치는 겁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각자의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릅니다. 무엇이 중요한가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를 수밖에 없지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요소를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수 있습니다.
인생은 거래가 아닙니다. 사랑도 거래가 아니고요.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 당신도 이만큼 내놓아야 한다, 이런 건 장사꾼의 마인드입니다. 인생을 거래로 보는 순간 불행은 시작됩니다.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내 몫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어진 삶이기 때문이지요.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가?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강의를 하는가? 나누기 위함입니다. 타인의 반응과 태도는 내 몫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들이 내게 어떤 반응을 보이든, 나는 그저 내 몫을 다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부부간에, 부모자식간에, 직장 동료간에, 주변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주는 만큼 받겠다는 생각만 삭제해도 인생은 한결 가벼워집니다.
때로 억울하고 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는 받은 만큼 다 주면서 살았던가? 내가 이토록 분하고 억울하니까 다른 사람은 이런 분함과 억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겠다 마음 먹는 것이 진정 내 자신을 위하는 길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