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당당하게 마주하기

by 글장이


499,800원. 영남대학교 병원 로비에 설치된 수납기기에 내 환자 번호를 입력했더니, 밑도 끝도 없이 검사료 총액부터 납부하라고 뜬다. 사람 같으면 뭐가 이렇게 비싸냐고 따져 물을 수나 있겠는데, 이건 뭐 뒤에 줄 선 사람들 눈치 봐서라도 얼른 결제부터 해야 하니.


그렇게 빼앗기듯 돈 50만 원을 결제하고는, 2층 심장 혈관 센터로 향했다. 우선, 두 가지 검사를 먼저 했다. 상의를 벗고 침상에 누워 가슴부터 허리까지 뭘 주렁주렁 붙이고 달아서 한참 기계 소리를 들어야 했다.


홀트 무슨 검사를 또 하고, 그런 다음 피를 뽑고, 소변 받아 제출하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엑스레이 찍었다. 무슨 아픈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지. 검사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붐빈다. 다들 옆에 보호자 한 명씩 같이 있는데, 나는 혼자였다. 혼자가 편하다.


평소 다니던 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중 심장 얘기가 나왔다. 전문 병원으로 한 번 가 보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심장?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혈압과 신경과 염증과 척추를 관리해오던 의사가 심장 얘기를 꺼낸 건 처음이었다.


신경 쓰이는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은데 몸까지 말을 안 듣는다. 건강 관리 마음 관리 뻔히 다 아는 얘기지만, 요즘 같은 때는 정말이지 어디 산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믿었던 사람들로부터의 배신과 상처. 내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심장 관련 검사를 마치고 병원을 나섰다. 봄바람이 훅 불어온다. 환자와 보호자들 모습 보는 기분 썩 좋지 않다. 병원은 되도록 다니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적극적으로 마주해야 한다.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문제들은 피할 곳이 없다. 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법이다.


오래 전 사업에 실패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현실을 회피할 수 있을 거란 기대였다. 어떻게든 시간을 잘 보내고 버티다 보면, 저절로 무슨 수가 생기겠지 하는 바람이 컸다. 그런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전과자가 되었고, 파산자가 되었으며,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막노동을 하다가, 결국 암에까지 걸리고 말았다. 이 모든 치명적인 꼬리표가 모두 일순간의 '회피' 때문이다.


그 시절, 내가 단 한 번이라도 내 앞에 닥친 고통과 시련을 직시하려는 용기를 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장 그 많은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그토록 처절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테지. 회피와 도망의 결과는 참혹했다.


수강생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편이다. 개인적 친분과 상관없이, 뭔가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거나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 때면, 가차없이 모진 소리 날려버린다. 내 소중한 사람들이 얼마나 충격받고 상처 받을지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하거나 욕되게 하려 했던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이 자신의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길 바랐던 거다. 나도 좋은 말로 얼르고 달래며 토닥토닥 그렇게 할 줄 안다. 나도 내 인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말만 하면서 살고 싶다.


그러나, 그런 말랑말랑한 정신상태가 삶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더할 수 없을 만큼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나는 결코 우리 수강생들에게 좋은 말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검사 결과는 다음 주 목요일 오전에 나온다. 그 때 병원에 다시 들러야 한다. 별 문제 없을 거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그럼에도 굳이 병원에 들러 50만원씩이나 써 가면서 검사를 한 이유는, 이제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절대 회피하거나 도망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거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고통 앞에서 주저하고 망설이며 도망갈 궁리만 할 것인가.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겨내고 극복할 것인가. 선택은 자유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개인의 몫이다. 내 인생에서 두 번 초라해지는 일은 없을 터다.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 기꺼이 보내겠다는 용기.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할 텐데, 그 또한 받아들일 용기. 그리고, 세상과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두려움을 극복할 용기. 바로 이런 용기가 내 삶을 빛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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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고 감추고 피하고 도망가고. 그런 인생 치졸하고 볼품 없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자기 죗값 제대로 치르고 인생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자만이 어깨 위 아우라를 걸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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