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것이 있다
치우다 보니 자꾸 손이 갔다. 처음엔 도저히 어쩔 방법이 없을 만큼 쌓여 있는 책만 좀 정리하자는 생각이었다. 예스24에 바이백 신청을 하고, 박스에 스무 권씩 담아 포장한 다음, 빌라 현관문 앞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친절하게도, 택배 직원이 스무 장의 영수증을 현관 앞에 놓아두고 박스를 싹 다 가져갔다.
그렇게 약 사백 권의 책이 빠져나가자 방이 훤해졌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훤해진 덕분에 여기저기 눈에 가시처럼 툭툭 튀어나온 물건들이 거슬렸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50리터짜리 쓰레기 봉투에 담았다. 언젠가 쓸 일 있겠지 하고 모아둔 잡다한 물건들을 미련없이 버렸다.
키보드와 가방이 제법 많다. 박스 하나에 담아 깔끔하게 정돈했다. 냉장고와 세탁기 사이에 쌓여 있던 먼지 뿌옇게 앉은 물건들도 모두 정리했다. 진공 청소기로 몇 번이나 방을 휘저었고, 물걸레로 바닥을 싹싹 닦았다. 땀이 방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다 했다 싶어 한숨을 내쉬고는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들어가는데, 치우는 김에 여기도 어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락스와 욕실용 세제를 곳곳에 쏟아붓고, 청소용 솔을 가지고 빡빡 문질렀다. 찌든 때가 다 벗겨지고, 화장실이 뽀얗게 반질거렸다.
이제 정말로, 전혀 다른 사무실이 되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직후, 오프라인 강의를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을 무렵부터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다. 처음엔 동대구역 인근 소호사무실 한 평짜리 임대했었다. 주변에서 강의 목소리 시끄럽다 하여 저 구석에 있는 세 평짜리 사무실로 옮겼다. 그런 다음, 이창현 강사의 소개로 집 근처 원룸 사무실로 이사를 했던 거다.
에어컨과 보일러를 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화장실 가려고 복도나 다른 층까지 다녀올 필요 없다는 게 행복했다. 무엇보다, 책상에 앉아 오른 팔을 뻗어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찼다. 감옥에서부터 수 년간 꿈 꿔오던 바로 그 사무실에, 내가 앉아 있다.
청소 마치고 향긋한 냄새까지 풍기는 사무실 의자에 널브러져 앉아 있으니, 문득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세월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사업 실패하고 전과자 파산자 되어 앞길 캄캄한 채로 막노동 현장을 누볐다. 그러다 책 출간하고 강의를 시작했고, 몇 달 후 막노동을 그만두었다. 전국을 오가며 강의하다가, 팬데믹 영향으로 온라인 강의를 하게 된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
다시 하라면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아무것도 몰랐으니 개고생 할 수 있었지, 그거 다 아는 상태에서 다시 할 사람 누가 있겠는가. 좋은 점도 한 가지 있다. 내가 그 모진 길 다 걸어왔다는 뿌듯함과 자부심 덕분에, 언제 어디에서나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여기 이 사무실이 어찌나 고마운지. 갑자기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게 훅 하고 치솟는다. 감옥 방바닥에 노트 펼쳐 꾹꾹 눌러 글 쓰다가, 아들 쓰던 앉은뱅이 책상에서 책 출간했고, 지금은 최신 노트북에 장비 다 갖추고 책상 앞에 번드시 앉아 모니터 5대 화면 띄워놓고 글 쓴다.
얼마 전, 한 선배가 운영한다는 강남에 있는 보험회사에 들른 적 있다. 25층에 위치한 사무실. 안내 받고 들어선 접견실 통유리창을 통해 한강을 비롯한 서울 시내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때, 멋있지?" 얼이 빠져 있는 나를 보며 막 들어온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상쾌했다. 고급스러운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선배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한 번씩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근사했다. 나도 이런 곳에서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그렇게 일 마치고 대구로 내려와 다시 내 사무실로 들어섰다. 몇 시간 전에 보았던 화려하고 멋진 사무실에 비하면, 참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냉장고에서 몬스터 캔 하나를 꺼내 목을 축이고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 밖에서 전투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좋은 걸 보면, 그저 좋구나 하면 될 것을. 우리는 자꾸만 그 좋은 것과 내 것을 비교하는 습성이 있다. 비교는 삶을 궁색하게 만든다. 세상에는 언제나 나보다 좋은 것과 나보다 못한 것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비교는 의미도 없고, 비교는 끝도 없고, 비교는 가치도 없다.
내가 어떻게 얻은 사무실인데. 내가 지금 여기 앉아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돌려 말하고 순하게 꾸며도 '기적'이란 단어를 피해갈 수 없다. 25층 한강 뷰 사무실이 아무리 멋지다 하더라도, 나의 여덟 평 사무실에 빗댈 수 없다. 당장 바꾸자 해도 그럴 마음 일도 없다.
내 소중한 공간 여덟 평. 나는 여기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강의를 한다. 이 곳은 내 삶의 터전이자 '나'란 존재를 증명하는 장소이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숭고하고 위대한 곳. 손을 뻗어 책상 모서리를 스윽 만져 본다.
살다 보면 지나치는 곳도 많지만, 내 모든 것이 녹아 있는 특별한 공간도 만나게 된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사무실은, 그 자체로 나에게 더할 수 없는 의미이자 가치다. 대청소를 하고 나니 더 마음에 든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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