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감정을 쓰는 방법

관심이 필요합니다

by 글장이


소설가 김영하 작가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짜증난다'는 말을 절대 못 쓰게 한다고 합니다. 자유로운 글쓰기를 지향하는 김영하 작가가 단어 사용에 제한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짜증난다'는 말이 '퉁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도 짜증난다, 속상해도 짜증난다, 우울해도 짜증난다, 서운해도 짜증난다, 날씨가 더워도 짜증난다, 날씨가 추워도 짜증난다...... 이렇듯 거의 모든 불편한 감정을 '짜증난다'는 한 마디로 갈무리해버리기 때문에, 독자가 그 감정을 명확히 해석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명확히'라는 말은 중요합니다. 글이란, 지식이나 감정을 독자에게 '명확히' 전달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불확실하고 희미한 내용이라면 굳이 글을 쓸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은 감정에 비해 쓰기가 수월합니다. 그렇다면 감정은 어떻게 쓰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오늘은 감정 쓰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설명하지 말고 보여준다.


화가 났다고 쓰지 말고,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다고 씁니다. 슬프다고 쓰지 말고, 자꾸 눈물이 흘러 글을 쓸 수가 없었다고 씁니다. 부끄럽다고 쓰지 말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고 씁니다.


직접적인 감정 설명은 독자로 하여금 해석의 여지를 갖지 못하게 합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스스로 작가의 감정을 해석하는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지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독자가 감정을 이입하여 작가와 같이 느낄 수 있도록 쓰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모든 감정의 크기는 동일하다.


분노, 침통, 감동 등 격한 감정만 감정이 아닙니다. 심심함, 권태로움, 나른함, 차분함 등도 엄연한 감정입니다. 초보 작가의 경우, 격한 감정만 글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모든 감정의 크기는 동일합니다. 모든 감정이 글감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지금보다 다양한 글을 쓸 수가 있을 겁니다.


셋째, 자신의 감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감정이 가슴을 뚫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이미 늦습니다. 감정에 휩싸여버리면 객관적 글쓰기가 힘들지요. 자신이 먼저 감정을 읽어주어야 합니다. 지금 내 감정이 어떠한가, 지금 내 기분이 어떠한가, 지금 내 느낌이 어떠한가.


감정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억지로 없애거나 생기게 할 수 없지요. 다만,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읽어주면 저절로 사그라들고 잠잠해집니다. 감정이 격해지지 않아야 비로소 한 걸음 물러나 글을 쓸 수가 있는 것이죠.


다른 사람한테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관심 많습니다. 연예인 가십부터 주변 사람 험담까지, 세상 돌아가는 온갖 일에 한 마디씩 끼어들지요. 그럴 시간 있으면 자신의 감정에 관심 갖고 신경 쓰는 편이 낫습니다. 내 감정 읽는 시간이 다른 사람 인생 얘기하는 시간보다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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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은 사실과 견해로 이루어집니다.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쓰는 것 못지않게 그 순간의 느낌과 감정과 기분을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생각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고민하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그 많고 다양한 감정을 기쁘다 슬프다 괴롭다 힘들다 아프다 등 몇 가지로 한정짓는 일 없어야 하겠습니다.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에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꽤 흥미진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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