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그럴 자격 있는가

트라우마, 그리고 가면증후군

by 글장이


아내는 새벽부터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고 갈치를 구웠으며 불고기를 볶았다. 아들은 기숙사에 있다가 간밤에 들러 집에서 잤다. 푸짐한 아침상을 사이에 두고 다섯 식구 둘러앉았다. 아버지는 두툼한 봉투를 내미셨다. "내가 너 생일인데 많이 넣지를 못했다."


이른 아침부터 카카오톡 축하와 선물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한다. 건강하라는 말이 제일 많고, 오늘 하루 행복하라는 말이 그 다음이며, 앞으로도 하는 일 다 잘 되라는 응원이 뒤를 잇는다.


너무 복에 겨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래서 아침밥 먹을 때도 말 수를 줄였고, 카카오톡 답신도 짧게 보냈다. 구구절절 더 말을 붙이다가는 오히려 내 감정이 더 빈약해 보일 것 같았다.


감옥에서 생일 보낸 적 있다. "축하한다"라는 말을 단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아니, 그 누구도 내 생일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나 혼자서만, 생일을 감옥에서 보내는구나 서글픈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시절, 이른 새벽에 일어나 거실에 불을 켜고 냉장고에서 달걀 하나를 꺼내 참기름을 두르고 후루룩 삼킨 생일도 있었다. 그때는 나 때문에 망가진 집안, 식구들한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이후로 생일 챙긴 적 별로 없다. 가족도 형편이 어려워 식구들 생일 일일이 챙기지 않았고, 나도 생일 가지고 이런 저런 말하지 않았다. 카카오톡에 생일이 표시되면서 자이언트 작가님들이 매년 생일이 되면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과거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어젯밤에도 요상한 꿈을 꾸고는 헉헉 대며 잠을 깼었다. 사업 실패와 감옥. 한 사람 인생에서 쉽게 잊지 못할 참혹했던 경험. 억울할 것도 분할 것도 없는, 나의 잘못으로 빚어진 결과였다.


다시 한 번 살아 보자는 생각으로 매일 글 쓰고 책 읽고 강의 연습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다행히도, 나의 노력을 갸륵하게 여겨주는 분들이 많았고, 그들의 응원과 도움으로 더 없는 삶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늘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제 어느 정도 살 만한 형편이 되었다고 해서, 이렇게 생일을 근사하고 화려하게 시작해도 되는 것인가 의문이다. 부끄럽고 염치 없다. 가족을 포함해,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지만, 정작 나 스스로는 여전히 나를 초라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 인생에서 가장 먼저 풀어내야 할 가면증후군 증상.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그럴 자격 있으니 고개 들고 살라 하면서, 나는 아직도 내 자격을 의심하며 살아간다.


나는 노력했다.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력했다. 일반적인 상황도 아니고,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 막노동꾼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거다. 조금씩 삶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진심으로 감사했고, 이만하면 되었겠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적 한 번도 없었다.


하루 4시간 수면,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글 쓰고 책 읽고 강의자료 만들고, 강의 연습을 하고. 그러다 몸이 망가지는 바람에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하고. 그 와중에도 책 출간했으며, 강의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나는 아직 나 자신에게 '그럴 만한 자격'을 부여하지 못하는가.


삶이 좋아질 무렵에 헛된 꿈을 꾸면서 폭삭 망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내가 또 마음을 풀고 건방을 떨면, 지난 날과 같이 추락하는 건 아닐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역시 나는 아직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거다.


아침밥을 다 먹은 후, 아들이 멋적게 나를 부른다. 아들 녀석이라 그런지 애살맞게 표현하지 못한다. "아빠, 이거." 딱 두 마디만 하면서 손을 내민다. 휴대용 키보드다. 이틀 전에 쿠팡에서 주문하고 기숙사에서 받아가지고 어젯밤에 가지고 온 거다. 짜식. 환하게 웃으며 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아들의 선물은 위력이 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물끄러미 키보드를 바라보면서, 그래, 나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생각하게 되었다. 건방과 오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금처럼 멈추지 않고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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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가 사라졌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다. 가면증후군이 없어졌는지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나는 오늘도 어제와 같이 살 것이며, 앞으로도 지난 10년과 변함없이 살아갈 거란 사실이다.


생일 축하를 근사하게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여전히 잘 모른다. 허나, 그런 자격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들이 가르쳐 준 셈이다. 오늘을 살고, 내 삶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고,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내가 잊지 말아야 할 태도인 것이다.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사무실 출근했다. 단백질 든든하게 보충한 아침이라 기운이 난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쓴다. 문장수업 강의 준비도 한다. 이번 주 "요약 독서법 심화 과정"도 준비한다. 오늘을 충실히 사는 것만이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저녁에 돼지갈비 먹으러 가서 내가 한 턱 쏘기로 했다. 아들은 그냥 기숙사 다시 들어가도 되는데, 학교 수업 듣고 되돌아와서 기어이 돼지갈비 먹고 가겠다 한다. 아들이 합류하면, 고깃값은 무조건 두 배 나온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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