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는 습관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요즘 방학이라 오전에 학교에 가서 자습하고, 집에 와서 점심 먹고, 다시 학교에 가거든요. 집에서 학교까지 붉과 십 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전화할 일이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전화를 받았지요.
"아빠! 비 와! 나 좀 데리러 와줘!"
글 쓰느라 빗소리를 못 들었나 싶어 허둥지둥 차 키를 챙겨 밖으로 나갔습니다. 주차장까지 가는데, 비는 커녕 햇볕만 쨍하네요. 국지성 호우라는 것도 있으니, 불과 십 분 거리여도 아들 학교 쪽에는 소나기가 오나 보다 싶어 서둘러 차를 몰았습니다.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한 방울도 보지 못했습니다. 바닥이 조금 젖어 있긴 했지만, 아무리 양보해도 저한테 전화해서 차를 가지고 오라고 할 정도로 비가 많이 오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뒷좌석에 올라타며 말합니다.
"신기하네! 아빠랑 전화 끊고 나니까 바로 비가 멎었어."
이걸 믿어야 돼 말아야 돼. 오늘 대구 기온은 올 여름 들어 최고였습니다. 숨을 쉬면 뜨거운 공기가 훅 하고 몸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지요. 워낙 더워서 편하게 집에 오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냥 너무 더우니까 차 좀 가져오라고 해도 되었을 텐데.
별 일도 아니지만, 왜 자꾸만 아들의 말에 의심이 생기는 걸까요. 비도 오지 않는데, 난데없이 전화를 해서 차를 가지고 오라고 했을 리는 없는데......
군에 복무할 때, 운전병과 군용 지프를 타고 시내에 다녀온 적 있습니다. 일과 중에 부대 밖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어서, 그 날은 저와 운전병은 내심 신이 났었지요. 음악을 틀어놓고 어깨춤을 추면서 도로를 쌩 달렸습니다.
우리 앞에 커다란 덤프 트럭이 있었는데요. 한참 달리던 중에 트럭 위에서 뭔가 휑 하고 날아오더니 우리 차 앞 범퍼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얼른 덤프 트럭을 가로질러 앞을 막고 차를 세웠습니다. 그러고나서 기사에게 항의했지요. 당신 차에서 돌이 떨어져 우리 차에 자국이 났으니 어떻게 할 거냐고 말이죠.
싸우고 말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차를 세우고 트럭 기사를 몰아붙이긴 했지만, 사실 우리 차에 난 흔적은 아주 경미했거든요. 뭐 대충 사과 받고 마무리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부대에 돌아오니, 차량을 총괄하는 부사관이 우리를 향해 냅다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운전병을 아주 쥐잡듯이 잡았습니다. 운전을 이 따위로 했느냐, 어디다가 차를 긁은 거냐, 대답할 틈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뜯어말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지요. 이만저만해서 트럭 기사에게 사과를 받고 그냥 보냈다고 말이죠. 부사관은 알았다고 하면서도 우리를 쳐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마치 우리가 차를 어딘가에 부딪쳐 사고를 내고 둘이서 말을 맞추기라도 했다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억울하다며 더 목소리를 높일수록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꼴이었으니 미칠 노릇이었지요.
믿어야 하는데, 쉽게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곧이곧대로 듣고, 있는 그대로 보고, 그렇구나 하고 끝내야 하는데, 마음 속에 자꾸만 찝찝함이 남습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일까요.
세상에 사기꾼이 많은 탓이다 라고 한다면, 저도 할 말은 없습니다.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해서 징역까지 살았으니 무슨 염치가 있겠습니까.
과장 광고 탓이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기 위해서 무엇이든 최고라고 광고하니까 선별의 기준이 사라져버린 것이죠.
어렵고 힘들게 사는 인생에서 괜한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는 심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더 좋은 게 있다 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냥 지금의 상황을 지키려고 합니다. 안전을 위해 모험을 포기하다 보니, 웬만한 말은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겁니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제 주변에는 친구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때로 제 삶을 함께 나눌 만한 진정한 친구가 누구일까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럴 때 참 외롭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사람에게 상처 주고, 사람 때문에 상처 입었습니다. 차라리 혼자였다면 싶은 때가 있었지요. 그 후로는 사람을 믿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고슴도치 인간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친절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다가도 선을 넘는다 싶으면 얼른 물러났고, 저한테 잘 해주는 사람들도 사회적 대인관계를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만 대했습니다.
이렇게 거리를 두고 살아가니까 이득 볼 일도 없고 손해 볼 일도 없더군요. 사람 때문에 상처 받는 일도 줄었고, 사람 때문에 속상한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이대로 살아가는 것이 옳은가 매 순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을 믿지 않는 습관이 굳어져, 이제는 아들이 비 온다고 하는 말도 믿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덤프 트럭에서 날아온 돌멩이 때문이라고 아무리 얘길 해도 믿어주지 않던 그 부사관 탓에 얼마나 속이 상했던가요. 웃으며 넘기긴 했지만, 아들도 제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것을 기억하며 살아갈 듯합니다.
믿어 보자, 믿고 살자, 하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춤거리게 됩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자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고요. 삶에 정답은 없겠지요. 관계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