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전부다
언제부터인가 저도 모르게 생긴 버릇입니다. 글을 쓸 때마다 제가 쓴 글을 소리내어 읽습니다. 큰 소리로 읽는 건 아니고요. 중얼중얼 읊조리듯 읽는 것이지요. 마음 속으로 읽어도 될 일인데, 소리내어 읽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래도 고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정규과정이나 문장수업을 진행할 때도 글을 소리내어 읽습니다. 강의를 해야 하니까 당연히 소리를 내는 것이지만, 때로는 글을 쓰면서 동시에 소리를 내며 읽는 경우도 있으니 고질병이 된 모양입니다.
글을 쓰고 소리내어 읽는 과정은 제게 세 가지 도움을 주었습니다. 덕분에 갈수록 글 쓰는 재미가 더욱 쏠쏠해지고 있습니다.
첫째, 잘 썼다 못 썼다 평가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예전의 저는 글을 쓸 때마다 제 글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려 했었거든요. 출간을 전제로 하다 보니, 아무래도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을 지울 수 없었던 탓이지요. 그런데, 소리를 내어 읽은 후부터는 좋고 나쁨의 구분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쓴다, 소리내어 읽는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평가'가 아니라 '행위'로서 만족했습니다. 제게 주어진 작가로서의 하루는, 글을 쓰고 소리내어 읽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점수를 얻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잖아요. 삶의 이야기, 전하고 싶은 메시지, 경험과 생각과 느낌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글쓰기 본질입니다. 그것이 독자의 마음에 닿아 공감과 화두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희열과 보람은 더 없을 테고요.
글쓰기 본질 어디에도 평가나 점수나 분석 따위는 없습니다. 삶과 똑같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시험이라도 치듯이, 어떤 관문을 통과라도 해야 한다는 듯이, 누군가의 허락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듯이 글을 쓰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둘째, 내가 어떤 내용의 글을 어떤 마음으로 쓰고 있는가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쓰는 행위에 몰입하다 보면, 내가 무슨 내용의 글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까맣게 잊을 때가 많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분명 어떤 내용을 어떻게 쓰겠다 마음을 먹지만, 막상 쓰다 보면 글이 산으로 가는 것이지요.
물론, 나중에 퇴고할 때 다듬고 수정하면 됩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붙잡아 의식하는 것과 생각을 놓치고 손 가는대로 쓰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글 쓰는 재미'라는 부분에서 크게 다릅니다.
자신이 쓴 글을 소리내어 읽으면, 다음에 어떤 내용을 쓰고 어떻게 이어가면 좋겠다 하는 생각의 가닥을 잡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그냥 막 쓰는 것보다 시간은 더 오래 걸립니다. 대신, 나중에 퇴고할 때 몽땅 뜯어고치는 작업이 줄어드니 매 한 가지일 테지요.
셋째, 소리내어 읽으면 외롭지 않습니다.
제가 쓰는 글의 첫 독자는 제 자신입니다. 진심을 다해 쓰는 작가, 그리고 정성껏 읽어주는 독자. 그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읽는 것이지요.
글 쓰는 일은 외롭고 힘든 작업입니다. 나름의 방법을 찾지 않으면 좌절하고 절망할 때가 많지요. 지속적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자극을 주지 않으면 포기하게 됩니다. 글을 쓰고 소리내어 읽는 행위는, 내가 지금 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과 보람까지 느끼게 해줍니다.
혼자 책상에 앉아 중얼거리며 글을 쓰고 읽으면, 곁에서 보면 미친 사람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어차피 정상적인 모습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 아닙니까. 미친 놈 소리 들어도 글만 신나게 쓸 수 있다면 까짓 얼마든지 들어줄 용의 있습니다.
글 쓰는 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사는 데 정답이 없는 것처럼요. 이렇게도 써 보고 저렇게도 써 보는 것이지요. 어떤 방법으로라도 계속 쓰겠다고만 하면 저는 무조건 찬성입니다.
지금도 글을 씁니다. 소리내어 읽습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