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끼는 내 아픔의 무게는
실패로 인한 파멸의 크기가 남들리 컸기 때문에, 너는 제가 제일 불행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책이나 강연 등 아무리 좋은 이야기와 동기부여 조언을 접해도, '당신들은 나만큼 힘들지는 않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거부했었지요.
감옥, 그리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힘든 사람이 참 많다는 사실을요. 제가 겪은 시련과 고통은 상대적으로 별 것 아닌 정도에 속했습니다. 그 사람들 삶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는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네, 맞습니다. 사람마다 다 상처와 아픔이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람도 있고, 속으로 감추고 살아가는 이도 많습니다. 저처럼,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대단히 큰 것'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저는 지금,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 아픔을 가장 크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을 하려는 겁니다.
감옥, 그리고 막노동판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상처가 저보다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상처가 저의 그것보다 더 크다는 사실이 제 상처를 아물게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나는 그나마 다행이다' 정도의 마음을 느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상처와 아픔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아픔'을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상대적 크기는 다 다릅니다. 하지만, 자신이 느끼는 정도가 문제인 것이지 상대적 비교는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내가 나의 상처를 얼마만큼의 무게로 느끼는가 하는 것이 내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목요일 밤 9시부터 한 시간 동안 125명 예비 작가님들과 제 260회 "이은대 문장수업" 함께 했습니다. 글쓰기/책쓰기 어렵고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글쓰기/책쓰기라도 유쾌하고 가볍게 여기는 사람 있는가 하면, 절망과 좌절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글쓰기/책쓰기가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어떤 감정을 얼마만큼 느끼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말입니다. 감정도 습관입니다. 무슨 일이든 고통스럽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일이든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절대적 기준은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 따라 그 일의 질이 결정됩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더 행복하기 위해서 선택하고 실행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굳이 인상 써가며 욕하면서 투덜거리면서 그렇게 임할 필요 없겠지요.
신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무게의 고통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각자 느끼는 고통의 무게는 다 다르다고 하네요. 결국, 인생 고난과 시련을 얼마만큼의 무게로 느끼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 고통의 실제 무게가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