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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에서 망했지만, 1년 후 절친이 된 이유

인간관계, 정성과 시간

by 글장이


전국을 다니며 강의하던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수강생이 첫 시간부터 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대부분은 강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데, P는 작정한 듯 제 바로 코앞에 자리를 잡았지요. 열심히 강의 들으려나 보다 짐작했습니다.


시작한 지 5분만에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아예 강의 들을 생각조차 없는 듯 보였습니다. 그냥 무시한 채 강의를 계속했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귀신 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수업 시작하면 다시 졸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강의하다가, 팔과 손 동작을 너무 크게 하면서 P의 책상에 놓인 종이컵을 툭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커피는 쏟아졌고, P의 책상에 놓인 노트와 바지까지 버리고 말았습니다. 시작부터 졸았던 P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커피를 쏟고 나니 미안한 마음 둘 곳이 없었지요.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그야말로 '엉망'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쯤 지난 후, 저는 다른 수강생들과 달리 P와 절친이 되었습니다. 마침 나이도 동갑이었고, 통하는 면도 많았습니다. 첫 만남이 '개판'이었는데, 불과 1년만에 어떻게 절친이 될 수 있었을까요?


첫째, 솔직해야 합니다. 저는 첫 수업 이후, P를 만날 때마다 "첫 시간에 조는 모습을 보며 못마땅했었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습니다. P는 어떤 이유로 밤에 잠을 못 자서 그랬다고 말했고, 제가 커피를 쏟았을 때 진짜 화가 났었다고도 말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든, 처음에 말을 할 때는 다소 민망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할수록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됩니다. 기분 나쁘지 않게,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는 습관이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줍니다.


둘째,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P는 꾸벅꾸벅 졸았고, 저는 커피를 쏟았습니다. 서로의 실수입니다. 우린 둘 다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죠. 세상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첫 만남에서 서로의 빈틈을 확인한 우리는, 덕분에 격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던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헛점을 숨기고 감추려 하는 속성이 있지요. 적어도 관계 측면에서는, 자신의 부족하고 모자란 점을 스스럼 없이 밝히는 것이 도움 됩니다.


넥타이를 꽉 조여맨 모습보다, 약간 풀어헤친 모습이 훨씬 인간답게 보입니다. 바로 그런 모습에서 친해지고 싶은 마음 품게 되는 것이지요. 꼼꼼한 면도 있고 어설픈 점도 있게 마련입니다. 가식과 위선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관계를 맺는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셋째, 관계는 시간이 증명합니다. P는 이후로, 서울에서 진행하는 거의 모든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놀고 먹는 사람도 아니고, P도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거든요. 그럼에도 제 강의를 듣기 위해 일정을 쪼개어 참여했습니다.


역시 사람과 사람은 서로 얼굴 마주하고 만나고 대화 나누는 시간 많이 가져야 친분이 생기는 법입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세상이 되었고, 모니터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소통 가능한 시대가 되었는데요.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직접 만나 눈 마주하며 대화 나누는 것에 비하면 온라인 세상은 한계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혹시 친해지고 싶은 사람 있다면, 기꺼이 자리 마련해서 직접 만날 용기와 기회를 가지길 권합니다.


첫 만남이 엉망이라 해서 끝내 관계를 포기할 필요 없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는가에 따라 상대의 반응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사람 한 명을 얻기 위해서 이 정도 노력은 할 수 있어야 마땅하겠지요.


단, 자연스러운 관계 말고 어떤 부탁이나 용건을 위해 인위적으로 '친한 척' 관계를 맺으려는 행위는 절대 삼가야 합니다. 사람을 이용하려는 수작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좋아야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태도 자체가 마땅치 않습니다. 일전에 어느 영업하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온 적 있는데요. 생면부지 첫 통화에서 "자이언트에서 영업하게 해 달라, 충분한 사례를 하겠다"라는 등 별 희한한 소리 들었습니다. 인간관계를 잘못 해석하면 그와 같이 무례한 행동을 하게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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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도 맞습니다. 그러나, 첫 만남이 틀어졌다 하여 관계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정성과 시간으로 서로를 증명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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