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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하면서 깨달은 초고 쓰기의 비밀

가장 일상적인 진리

by 글장이


지금은 제 일이 바쁘기도 하고, 딱히 제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기회도 없습니다. 아들이 어렸을 적에는 저한테도 '아빠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위한 요리도 많이 했고, 그래서 설거지도 자주 했습니다.


오늘 문득 설거지하던 때가 떠올랐는데요. 설거지와 초고를 쓰는 일이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설거지 할 수 있는 사람은 초고도 쓸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물에 불려야 합니다. 음식 찌꺼기가 그릇에 덕지덕지 붙어 있으면, 수세미로 빡빡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는 경우 종종 있습니다. 씽크대 큰 용기에 물을 받아놓고, 그릇을 물에 담궈 잠시라도 불리면 설거지하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초고 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을 숙성시켜야 합니다. 어떤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고 해서 마구 집필을 시작하는 작가 있는데요. 그렇게 하면, 당장 한두 꼭지는 쓸 수 있을지 몰라도, 책쓰기라는 마라톤을 완주하기는 힘듭니다.


아이디어와 관련 있는 메모도 하고, 책도 읽고, 구성도 스케치하면서 생각을 조금이라도 숙성시켜야 책 집필하기가 수월합니다. 그릇을 물에 불려야 씻기 편하듯이, 생각을 숙성해야만 글 쓰기가 편해집니다.


둘째, 종류별로 하나씩 나눠 씻어야 합니다. 온갖 종류의 그릇을 한꺼번에 씻으려 하면 두 배로 힘듭니다. 밥그릇은 밥그릇 대로, 접시는 접시 대로, 국그릇은 국그릇 대로. 이렇게 그릇의 종류별로 차근차근 씻으면 한결 깔끔하고 힘도 덜 듭니다.


초고를 쓸 때도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초보 작가가 "책을 쓰려고" 덤비는데요. 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세상에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이죠. 우리가 오늘 쓸 수 있는 글은 고작해야 한두 편입니다.


카테고리별로 나눠서 목차를 정하고, 하루 한 편의 글을 정성껏 쓰는 것이 최선입니다. 빨리 다 쓰고 싶은 욕심이야 누군들 다르겠습니까. 허나, 많은 양의 글을 한꺼번에 쓰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자신의 일과를 잘 살펴서, 매일 쓸 수 있는 분량을 정한 후, 꾸준하게 집필하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 물로 헹구고, 세제 바르고, 다시 물로 헹굽니다. 설거지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세제를 마구 처바르면, 그릇에 남아 있던 음식물 찌꺼기와 수세미가 마구 섞여 뒤에 씻는 그릇을 더 더럽힐 수도 있습니다. 순서를 지키는 것이 설거지 깔끔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초고를 쓸 때도 순서가 적용됩니다. 책을 쓰기 위해서는, "기획-초고-퇴고-탈고-투고-계약-출간"이라는 순서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세상 어떤 작가도 이 순서를 뒤집을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초고 집필과 퇴고를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 이 말입니다. 초보 작가 중에는, 초고 집필하면서 바로바로 고치는 사람 드물지 않은데요. 이런 식으로 하면, 시간과 에너지 효율 면에서 낭비가 심합니다. 초고를 쓸 때는 오직 분량 채우느 데에만 집중하고, 고치고 다듬는 일은 퇴고할 때 몰아붙여야 합니다.


다섯째, 그릇이 수북이 쌓이기 전에 미리미리 설거지해야 합니다. 하루만 미뤄도 씽크대가 지저분한 그릇으로 가득 찹니다. 먹고 치우는 것조차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무슨 큰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책 출간하겠다 결심하고 초고 집필을 시작해놓고, 계속 미루기만 하면 결국 원고 완성 못 합니다. 하루이틀만에 싹 해치울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써 나가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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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는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초고 집필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사람만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자기 인생 이야기, 오늘을 살아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참! 설거지 끝낸 후, 반드시 주변 물기 닦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글 다 썼다고 바로 손 털지 말고, 자신이 쓴 글을 꼭 한 번 찬찬히 읽어 보는 정성,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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