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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사람들의 고성이 들린다

술 한 잔에 삶을 기대는 사람들

by 글장이


사무실은 빌라 3층이다. 큰 도로 옆에 카페 길이 있고, 한 블럭 안쪽으로 들어오면 빌라가 줄지어 서 있다. 나는 그 중 하나의 건물에 세 들어 사무실을 꾸몄다. 여덟 평짜리 원룸에서 나는, 5년째 1인기업을 운영중이다.


빌라 바로 인근에는 횟집과 막창, 그리고 꽃게 식당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밥 먹는 식당이라기보다는 술 마시는 주점에 가깝다. 밤 8시쯤 되면, 어느 집에서 나온 손님들인지 고성이 시작된다. 한 잔 더 하자는 소리, 그만 집에 가자는 소리, 대리 기사 부르라는 소리....


그러다 밤 10시가 넘어가면, 이번에는 어김없이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로 싸우는가 암만 귀를 기울여봐도, 그냥 마구 고함을 질러대는 통에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일요일 빼고 거의 매일, 나는 술에 취한 사람들의 고함 소리를 듣는다.


식당은 모두 오후 5시쯤 문을 연다. 아마도 퇴근 후에 한 잔 하려고 들르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직장 동료, 친구, 가족....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앉아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돌릴 테지. 그 맛이 얼마나 짜릿하겠는가.


360일 술 마시면서 살았다. 사람들 모이면 술을 마셨고, 혼자 밥 먹을 때도 마셨다. 알코올 중독 판정을 받고 난 후에,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다 생각했을 적에도 거의 매일 몇 잔씩 들이켰다. 술은 종류별로 다 마셔 봤고, 술 취한 사람들 모습도 종류별로 다 봤다.


술 마시면 어떤 기분인지, 왜 우는지, 왜 화를 내는지, 왜 집에 들어가기 싫은지, 왜 목소리가 커지는지.... 술은 내게 아주 작은 위로와 엄청난 절망을 안겨주었다.


2019년 9월 8일. 서울에서 진행한 작가 탄생 300호 기념 파티에서, 나는 금주를 선언했다. 이후로 지금까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6년 넘었다. 이젠, 술이 생각 나지 않는다.


그 시절 나를 아는 사람들은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라며, 아직도 내가 술 끊을 걸 믿지 못한다는 투로 말한다. 어머니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하신다. 이은대 하면 술이었는데, 그 술을 내가 끊었다. 나도 신기하다.


술 끊어서 제일 좋은 점은, 언제 어디서나 당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하루를 살면서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날 때 머리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도 예전엔 몰랐다. 어쨌든 금주는 내게, 전혀 다른 삶을 안겨주었다.


사무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술에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서로를 기댄 채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글 쓰고 책 읽고 강의 자료 만들려면 세상 고요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나는 술에 취한 그들의 모습이 보기 싫지가 않다.


사는 게 힘들면 가장 먼저 소주잔이 그리운 법이다. 안주는 중요하지 않다. 시원한 소주 한 잔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아주 잠시지만 지금 여기 술자리는 '안전'하다는 사실을 느낀다.


쥐어박는 소릴 하는 사람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고, 당장 처리해야 할 급한 일도 잊는다. 술자리. 그 자리에서만큼은 나는 온전히 편안하다. 그게 술 때문인지, 술자리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취하면, 현실의 걱정이나 고민 따위 잊을 수 있다.


내가 지금 아무리 술과 술자리 예찬을 해도, 역시나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술을 끊는 것이 삶에 이롭다. 사람은 맨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자기 주관 대로 살아야 한다. 취하면, 술기운이 모든 걸 앗아간다.


술에 자주 취하는 사람은, 술 말고는 다른 즐거움을 찾지 못한 탓이다. 술자리 말고는 스트레스 풀 만한 다른 자기만의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다. 술이 나를 달래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술에 기대는 거다. 석 잔이든 세 병이든, 술을 거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삶을 찾을 수 있다.


술 끊기 전에는, 내가 과연 술을 끊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 절대로 술 끊고는 못 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술을 딱 끊고 나니까, 내가 왜 이제서야 술을 끊었을까 싶은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인생에서, 술 때문에 잃은 게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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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동네 아저씨들의 주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술 마시는 시간보다 글 쓰는 시간이 낫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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