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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유가 있다

선택과 결정

by 글장이


동대구역에 가기 위해 카카오택시를 불렀습니다. 동대구역은 정문과 후문, 신세계백화점 방향, 지하 주차장 등 진입하는 경로가 다양합니다. 집에서 출발하면 동대구역 후문 쪽으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그런데, 오늘 탑승한 택시는 '가까운 길을 두고' 멀리 돌아서 신세계백화점 쪽으로 가는 겁니다.


"기사님, 아까 저기에서 우회전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기사는 정색을 하며 설명합니다.

"손님, 카카오택시는 탑승하실 때 미리 경로를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손님께서 호출하실 때 이미 카카오맵에 경로가 지정되어 뜨고, 기사가 임의로 경로를 수정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었지요. 가까운 길을 두고 일부러 멀리 돌아가는 이유가 마치 몇 푼 돈 때문인 것처럼 느꼈습니다. 불쾌했지요.


하지만, 이어지는 기사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럴 만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택시가 운행중 사고를 일으키거나 당하게 되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요. 만약, 정해진 길 외에 기사가 임의로 경로를 바꾸면 사고의 책임을 오롯이 기사가 져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여성 고객이나 약자 승객이 탑승했을 경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입력된 카카오맵 경로가 고스란히 저장된다고 합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불미스러운 사고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차원이라 합니다.


처음에는 약간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기사에게 따지듯 물었으나, 자초지종을 듣고 나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손님. 우리 택시 기사들이 이런 내용을 일일이 손님들한테 하나하나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이야 손님이 물어보시니까 제가 대답을 하는 것이지만, 하루에 수십 명 손님 태우고 다니는 기사들이 똑같은 설명을 계속 반복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뻔히 빠른 길 알면서도 경로대로 움직여야 하는 택시 기사의 심정도 알 만했고, 승객들한테 오해를 받는 상황이 잦은 것도 안타까웠습니다.


무슨 일이든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해당 분야에서 오래 일하고, 나름 고민하고 연구해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겠지요. 물론, 사람에 따라 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상대를 향해 '잘못되었다'고 하기 전에, 그 고충을 먼저 이해하고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배려해주는 마음도 중요하겠지요.


때로,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해서 상대의 생각이 틀렸다고 보는 것은 마땅치않은 태도입니다.


생각없는 사람 없고, 일 망치자고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도 없습니다. 나도 부족하고 상대도 불완전합니다. 택시 기사는 전문가이고 저는 승객입니다. 기사가 더 많이 고민했을 것이고, 기사가 더 많이 마음 다쳤을 것이고, 기사가 더 많이 힘들 겁니다. 제 입장에서는 마땅치않은 일이지만, 기사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죠.


자이언트 수업과 오픈채팅방, 카페 운영 등 여러 분야에서 고민과 연구 많이 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여러 개의 선택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하는 비애(?)를 수시로 겪으며 버텨왔습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제가 내린 그 결정이 최선이라고 믿고 밀어붙여야 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망설이고 주저할 때도 있습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이미 지난 일에 대해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결정을 내릴 때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이지요.


다른 사람의 선택과 결정을 놓고 잘했네 못했네 평가하고 훈수 두는 일은 세 살 먹은 애도 할 수 있습니다. 정작 본인이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자신의 최고의 결정을 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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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난 만큼 상대방도 잘났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상대도 생각합니다. 누군가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했을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덕분에 설명도 잘 들었고, 편안하게 잘 왔습니다. 기사님, 오늘 사입 빨리 끝내고 돈 많이 버세요!"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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