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내게 주는 메시지
현관문은 세상과 나와의 경계입니다. 동시에 내가 세상으로 나가는 출구이기도 합니다. 하루라는 삶을 마치고 돌아오는 안식의 입구이기도 합니다. "확" 열고 "쾅" 닫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경건하려고 애씁니다. 현관문을 대하는 태도가 곧 삶을 대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일기는 내 인생 역사의 기록입니다. 참 다행입니다. 일기장에는 나의 치부와 욕설까지도 마음껏 담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를 위한 글을 쓰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지만, 독자를 철저히 외면하고 쓸 수 있는 글이 있어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일기는 기록이면서 동시에 고백입니다.
커피는 생명수이면서 동시에 독약입니다.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기도 하고, 카페인에 절어 몸을 망치기도 합니다. 적당함의 미학. 음미와 절제가 모두 필요한, 어쩌면 살아가는 태도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과 마시지 않겠다는 결연함을 매일 누리고 결단하며 살아갑니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그런데, 그 메시지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무조건 독자들한테 이것 해라 저것 해야 한다 내지르는 것만이 메시지는 아니었습니다.
때로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도 하고, 함께 분노하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러니까 심리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메시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메시지를 잘 만들어낼 수 있을까? 수도 없이 고민했습니다. 조금 과장하면, 아침부터 밤까지 메시지만 생각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결국 제가 찾아낸 방법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현관문, 일기, 커피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처음에는 억지스럽다 싶었는데, 자꾸 반복하니까 재미가 들기 시작했지요. 스마트폰, 베란다 창문, 식탁, 음식, 옷, 노트북, 일, 사람, 가족, 글쓰기...... 무엇이든 눈에 띄기만 하면, 귀에 들리기만 하면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건과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내용을 글에 담으니 조금씩 글이 좋아졌습니다. 쓰는 것도 좋아졌고 읽는 것도 행복했지요. 물론, 의미를 부여하고 글을 쓰는 과정이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때로 고통스럽고,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통과 좌절과 절망마저도 의미를 찾게 되니 결국은 이겨낼 수 있었던 겁니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상처와 아픔으로만 남는다면, 아마 저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우리들의 과거, 우리들의 상처......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고 아팠던가요! 다 지나고 났으니 이렇게 푸념이라도 하는 것이지, 그 순간에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지 않습니까.
남은 삶에서 시련을 만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또 벽에 부딪히고 아파하고 쓰러질 겁니다. 그럴 때마다 눈물 흘리고 괴로워하겠지요. 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내게 오는 이유, 그렇습니다,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요.
사업에 실패하고 감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참혹했던 일들. 파산하고, 알코올 중독으로 형편없이 살았던 날들. 막노동 현장에서 시커멓게 그을려 온몸에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쓰고 생계를 유지했던 시간들. 그 모든 삶의 나날들이 '나'라는 존재를 완성시켰습니다.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아무런 의미 없는 인생은 없는 법이니까요.
고난과 역경이 제게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가슴벅찬 희열과 즐거움이 제 삶에 던지는 가치가 있지요. 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생에서 만나는 의미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뼛속까지 새겨넣어 '나'를 완성해 나가고자 합니다.
오늘도 글을 씁니다. 오늘이라는 하루가 제게 주는 의미! 그것으로 제 삶을 만들고, 또 다른 누군가를 돕고자 합니다. 작가니까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