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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파도에 신경쓰지 않는다

넓고 깊고 거대하게

by 글장이


강릉 경포대. 오늘은 그때와 달랐습니다. 지독한 아픔의 한 순간을 마치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첫날, 경포대 바다 앞에서 모래를 주워 던지면서, 저는 울었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고, 주변에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늘은, 웃었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한 점도 없었으며 태양은 빛났습니다. 저는, 세상을 다 가진 듯했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오래 전 그때는...... 밑창이 떨어진 신발을 2년 동안 신고 다녔습니다. 아들이 먹고 싶다는 치킨 한 번 시원하게 사줄 수 없었지요. 오늘은...... 가족이 무엇을 원하든 모두 해줄 수 있었습니다.


겨울바다답게 파도와 바람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해변에는 하얀 거품이 쉴 새 없이 부서졌습니다. 서로 자리를 빼앗기도 하고, 이리저리 부딪치기도 하고, 밀고 당기며 난리를 피우고 있습니다.


바다는 그런 파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저 멀리 크고 넓은 대양은 색깔조차 시커멓게 웅장합니다. 가장자리 파도는 바다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데도, 소란스럽고 부산하며 법석을 부립니다.


선택하라면, 바다처럼 살고 싶습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부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파도는 '얕은' 바다입니다. 깊이가 없으니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얕고 작은 삶을 살았습니다. 좋은 일 생기면 난리를 피우고, 나쁜 일 생기면 곧 죽을 것처럼 한숨을 쉬었지요. 내 것이 생기면 빼앗기지 않으려고 악을 썼고, 남의 것 빼앗으려고 눈 시뻘게가지고 다녔습니다.


사는 게 힘들었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환경이나 조건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제 마음 때문이었지요. 파도였습니다. 그래서 늘 입에다 거품을 물고 살았던 것입니다.


아직도 멀었지만, 그래도 글 쓰며 살아온 덕분에 색이 조금은 짙어졌습니다. 깊이도 생겼고 소란도 줄었습니다. 점점 더 거대하고 넓은 바다가 되려 합니다. 노력하고 연습할 겁니다. 책 읽고 글 쓰면서, 제 삶을 지켜 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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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여행 왔습니다. 세인트 존스 호텔 방에서 글 쓰고 있습니다. 아들은 성인이 되었다며 캔맥주 한 잔 했습니다. 멀리 밤 바다 소리가 들립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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