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세상
파도 치는 모습을 동영상에 담으려고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다가 손이 미끄러져 하마터면 폰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그바람에 영상이 심하게 흔들렸는데요. 가만히 보고 있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나서 다시 촬영을 했습니다.
바다를 눈앞에 두고 폰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어지럽게 찍어 보았습니다. 완성된 동영상을 봅니다. 머리가 핑 돌 지경입니다. 마치 지구가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마치 바다가 흔들리는 듯했습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바다를 보았습니다. 평온한 바다. 파도가 아무리 세게 쳐도 커다란 바다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스마트폰 속에 촬영된 영상은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는데 말이죠.
세상을 탓했습니다. 사람을 핑계로 삼았습니다.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한탄하고 화를 냈지요. 바다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저만 이리저리 움직였을 뿐입니다.
살다 보면 여러가지 일을 겪게 되는데요. 그럴 때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타인과 일과 환경을 탓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약속에 늦으면 도로가 막힌 탓이고, 책을 읽지 못하는 건 일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며, 짜증을 내는 건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탓입니다.
세상이 나를 움직이게 할 수도 없고, 세상이 나를 막을 수도 없습니다. 바다는 그저 자기 몫의 역할만 다 할 뿐이지요. 내 삶과 바다를 엮어 아무리 이런저런 인과관계를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그건 모두 말이 되지 않는 억지일 뿐입니다. 내 삶은, 오직 내가 만드는 것이지요.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건 '나'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바다를 많이 보았습니다. 송정 해변, 정동진, 경포대, 아들바위, 도깨비 촬영지 방파제, 그리고 다시 경포대 해수욕장...... 동해안 바다를 좋아합니다만, 특히 강릉 바다는 오래도록 제 가슴에 남을 것 같습니다.
느끼고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도 강릉 바다를 본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바다는 그대로인데, 제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일 테지요.
바다를 보듯 세상을 보려 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이며 움직이는 것은 늘 나 자신 뿐이란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 세상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내 마음이 번잡한 탓이고, 세상이 원망스러운 건 내 삶에 문제가 있는 때문이며, 세상이 사랑스러운 건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증거일 겁니다.
두 손을 가만히, 고요하게...... 다시 영상을 찍었습니다. 파도 소리가 듣기 좋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