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사이
어머니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밤 9시가 넘어서야 돌아오셨습니다. 아버지는 태백산 눈꽃축제 가셨고요. 사람이 어떻게 집에만 있겠습니까.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가고 싶은 곳도 있게 마련이지요. 문제는 건강 상태입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한쪽 다리가 불편합니다. 골반 골절로 큰 수술을 받았고,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절뚝거립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척추 수술과 심장 수술을 연거푸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두 분 모두 틈만 나면 밖으로 다니시니 제 마음이 늘 노심초사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야 합니다. 하기로 결심한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합니다. 일단 시작한 일은 끝장을 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못마땅한 때가 많지만, 사실 두 분의 모습은 제 안에 고스란히 담긴 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2년쯤 전인가, 진해 어딘가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통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낯선 동네였죠. 차에서 내려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 골목 어귀를 어슬렁거리며 전화를 했습니다.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졌지요. "야 이 씨팔새끼야! 남이 집 앞에서 담배를 피냐! 당장 꺼져!"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제가 매일 그 자리에서 담배를 핀 것도 아니고, 제가 담배 피운 자리가 금연 구역도 아니고, 그 곳이 남의 집 창문 바로 아래였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저도 주택가에서 담배를 피웠으니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 대뜸 고성과 욕설을 들을 만큼 큰 죄를 지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서로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지르다가 일단락 되었죠.
열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전국을 다녔습니다. 주변 사람 배려하지 못하고 무식하게 통화하거나 수다 떠는 사람들 꼭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보면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일어서서 그들 곁으로 갑니다. "저기요! 통화를 하려면 객실 밖 통로로 나가서 하세요! 세 살 먹은 애도 아는 기본을 다 큰 어른이 뭐하는 짓입니까!"
운전을 하다 보면 부득이하게 끼어들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친절한 운전자를 만나면 아무 문제없이 끼어들 수 있지만, 때로 성질 더러운 운전자를 만나면 온갖 욕설과 손가락질을 받아야 합니다. 좀 봐 주면 될 텐데, 왜 저리도 난리를 치는 것일까. 아쉽기도 하고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들지요.
저는 운전할 때 괴팍한 편입니다. 정상적으로 신호와 속도를 지키며 운전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깜빡이도 없이 끼어드는 차도 있고, 갑자기 속도를 확 줄여 당황하게 만드는 차도 있습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 너무 싫습니다. 짜증과 분노가 확 일어나지요.
그 동안 운전하면서 제가 남에게 퍼부었던 욕설과 손가락질만큼, 딱 그 만큼 저도 남한테 들으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우연이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정해놓은 모양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분위기와 비슷해질 때가 있고 싫어하는 사람의 문체를 닮을 때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분위기와 비슷한 글을 쓸 때면 왠지 기분이 붕 뜨는 것 같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의 문체를 닮는다 싶을 때면 의욕이 팍 떨어집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닮고자 노력합니다. 문장 자체보다는 그들의 정신과 노력과 세계관을 닮으려는 것이지요. 닮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네, 맞습니다. 그들의 글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자기 삶을 반듯하게 만들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삶을 자주 떠올리고 닮기 위해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닮으려 노력하면, 어느 새 삶도 그들처럼 좋아지게 마련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장단점 가지고 있습니다. 내 가치관과 세계관에 비추어 보면 마땅치 않게 느껴지는 사람 많습니다. 대체 왜 저럴까?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나. 내가 얼마나 잘해 줬는데. 이렇게 나와 타인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방식을 '타자화'라고 합니다. 작가가 타자화라는 인식을 갖는 순간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저 사람이 모든 것이 내 안에도 있다는 생각, 내가 가진 모든 생각이 저 사람 안에도 깃들어 있다는 교감이야말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태도겠지요. 어렵습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괘씸한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스물거립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불편한 마음을 가질 때마다 불행한 사람은 '나'라는 사실이지요.
제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 속에 '내'가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합니다. 결국 저는 저 자신에게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한 셈이니까요. 분리시키지 말고 안아 주어야 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갑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 뭔가를 배우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을 나에게서 보게 될 때가 많습니다. 시기와 질투와 분노가 결국은 나를 망가뜨리는 감정인 것이죠. 세상과 사람을 품을 날이 올 거라는 기대로, 오늘도 글을 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