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아픔은 어떻게 의미가 되는가
글쓰기/책쓰기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과거 상처와 아픔을 글로 쓰기가 힘들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강사라고 해서, 코치라는 이유로, 무조건 쓰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저도 처음에 글을 쓸 때, 전과자 파산자 이야기 참 쓰기 힘들었거든요. 이게 뭐라고, 글쓰기가 뭐라고, 내 아픔까지 죄다 드러내야 하는 것인가. 심지어 화까지 났습니다.
그러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잃을 것도 없는데. 나는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때부터입니다. 막 쓰기 시작했지요.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 그러고는 닥치는 대로 글을 썼습니다. 책도 냈고요.
저한테는 지독한 아픔이었는데, 사람들은 제 아픔을 읽고 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독한 마음 품고 썼는데, 독자들은 제 이야기를 읽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아픔을 쓴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한테 나의 치부를 드러내어 입방아를 찧게 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감옥에서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아무것도 몰라서 책을 읽었습니다. 독서가 글쓰기에 도움된다는 말만 믿고 무조건 읽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실제로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일 테지요. 분명한 것은, 독서와 글쓰기의 상관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다시 살 수 있게 된 동력은 확실히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도 그런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탁월한 문장력으로 문학상을 받는 일 따위는 관심 없습니다. 누군가 제 글을 읽고 생각이 바뀌거나, 저처럼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을 했었지요. 돈도 안 되는 생각이라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가장 먼저 자신에게 고백해야 합니다. 과거의 그 상처가 '내 탓이 아님'을 밝혀야 합니다. 타인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입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이 아닌데, 왜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아야 합니까. 살다 보면 별일 다 생깁니다.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을 뿐입니다. 죄책감을 갖고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은 예외없이 '지금'을 살아갑니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지금 고통받는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이제 그만 놓아버려야 합니다. 그 동안 상처와 아픔 때문에 괴로워한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당당히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지요. 치유? 저는 그런 말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팩트를 사랑합니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깔끔하게 정리하고, 지금 마주하는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나 자신과 삶을 위한 바람직한 태도라는 사실. 이것이 팩트 아닐까요.
상처를 글로 쓰라고 누구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어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제가 해 보니까요. 그거 별 것 아니었습니다. 눈물 조금 나고, 심장이 조금 아립니다. 대신, 한 번 넘어서고 나니까 인생이 가벼워집니다.
세상에 공개하기 꺼려진다면, 혼자만의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과장하고 허풍 떠는 것보다, 자신에게 솔직한 글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사실 그대로, 꾸밈없이, 경험과 감정을 죄다 적어 보는 겁니다. 휴지 한 통 갖다 놓고, 맥주도 한 캔 곁에 두고, 아주 작정을 하고 과거의 나와 마주합니다.
글이 되든 말든, 하고 싶은 말 몽땅 쏟아붓고 나면 속이 좀 후련해질 겁니다. 물론, 한두 번 글을 쓴다고 해서 상처와 아픔이 확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틈날 때마다 시도합니다. 어느 순간이 되면, 글을 쓰는데도 눈물이 흐르지 않을 겁니다. 더 이상 가슴이 아프지도 않고요. 덤덤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누군가가 내 글 덕분에 살아갈 용기를 갖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할 겁니다.
우리의 상처는 구경 거리가 아닙니다. 상처입은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어깨입니다. 품을 내어 주세요. 세상에는 힘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