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사랑하는 길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 노트에 옮겨 적었지요.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독서를 시작했기 때문에, 작가들의 생각 조각들이 제게 버티는 힘을 주었습니다. 진작에 책을 읽었더라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후회와 함께.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문장을 가슴에 담다 보니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나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버티는 힘을 주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글을 써도 '누군가를 돕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자꾸만 '흉내내고 있다'는 느낌만 가득했습니다. 글을 쓰는 게 아니라 '퍼나르고 있다'는 심정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남의 생각, 남의 글, 다른 사람의 삶을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자님 말씀'이었습니다. 희망을 가져라, 용기를 품어라, 인내심을 갖고 묵묵히 나아가라, 자신을 사랑하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 세상 좋은 말이긴 합니다만, 공허합니다. 실체가 없습니다. 이런 글이 가지는 치명적인 약점은, '내 글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있는 그대로 써야 한다는 말을 책에서 자주 읽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실제로 제가 쓰는 글에 적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내 글'이 되는가. 맨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나의 글'에 가장 어울리는 장르가 일기입니다. 매일 썼습니다. 일기의 좋은 점? 그런 건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나의 글'을 찾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죠. 다행스럽게도 저는, 오래지 않아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이야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아니, 그 전에 제가 왜 멀쩡한 회사 생활을 때려치우고 사업을 벌였는가 이유부터 썼습니다. 돈 욕심이었죠. 제 생각이었고 제 경험이었으니까 잘 쓰든 못 쓰든 술술 써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글의 끝에 한 줄 메시지를 덧붙였지요. "돈 욕심 절대로 부리지 마라!"
이전에도 돈 욕심 부리지 말라는 글을 쓴 적 있었습니다. 그때는 내 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같았고 주례사 비슷하다는 느낌만 들었지요. 그런데, '나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쓴 다음에 '돈 욕심 부리지 마라'는 메시지를 붙이니까 그제야 '나의 글'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말을 할 때도 자신감 넘치면 목소리가 커지잖아요.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의 경험, 그러니까 내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쓰다 보니 문체도 점점 강성을 띄게 되었지요. 확실했으니까요. 분명하게 아는 내용이었으니까요. 당연히 글 속의 목소리도 당당하고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로 저는 모든 글에 저의 경험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포스팅도 예외가 아니고요. 베스트셀러 작가? 그런 건 모르겠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매일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블로그는 7년 넘었습니다. 책도 일곱 권 냈고, 전자책도 네 권 썼습니다. 542명 작가도 배출했습니다.
글 쓰는 방법을 묻는 이들에게 딱 한 가지만 전하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당신의 경험을 써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자님 말씀과 자신의 경험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경험담의 핵심은 구체성에 있지요.
부부싸움 하지 말라고 쓰면 주례사가 됩니다. 하지만, 남편의 눈빛에서 살의를 느꼈다고 쓰면 나만의 스토리가 됩니다.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죠. 벽에 걸린 그림도 언급하고, 베란다에 핀 꽃도 설명하고, 바깥 날씨도 보여줍니다. 독자를 그 상황으로 끌어들이면 공감을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만의 글을 쓰다 보면 또 다른 문제가 한 가지 발생합니다. 내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저는 강성의 글을 쓴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세상에는 말랑말랑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제 글을 읽으면 너무 강해서 싫다고 합니다.
지난 7년 동안 일곱 권의 책을 냈는데, 독자 서평이 올라올 때마다 "너무 강해서 거부감이 든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제 기분이 어땠을까요? 네, 맞습니다. 불편했습니다. 독자들이 내 글을 싫어한다는데 기분 좋은 작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독자 반응에 귀가 팔랑거리면 자기만의 글은 색채를 잃기 시작합니다. 만약 제가 그들의 반응에 밀려서 감성적인 글을 쓰려고 노력했더라면, 강성의 문체를 좋아하는 독자들을 모두 잃고 말았겠지요. 내 글이 아닌 가짜 글이니까 결국 입맛을 맞추려 했던 독자들도 품에 안지 못했을 겁니다. 모두 잃고 마는 것이죠.
다양한 독자만큼 다양한 작가가 존재합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삶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글이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원숭이는 원숭이다운 글을 써야 하고, 물고기는 물고기다운 글을 써야 합니다. 원숭이가 수영하는 이야기, 물고기가 나무 타는 이야기는 신기하긴 하겠지만 신뢰나 공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자기 글을 쓰지 않으면 글 쓰는 재미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노동이 되는 셈이죠. 억지로 쓰긴 하지만, 보람이나 가치 느낄 수가 없습니다.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써야 하니까 쓰는 겁니다. 절대로 오래 가지 못합니다. 책 한 권 달랑 쓰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작가가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써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씁니다. 구체적으로 씁니다. 좋은 말만 늘어놓지 말고, 부족하고 모자란 점도 솔직하게 풀어놓습니다. 작가는, 명동 한복판에 홀딱 벗고 서 있을 용기 정도는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 처음부터 이런 내용 모두 썼습니다. 그래서 제 삶이 이토록 가벼워진 것이죠. 독자들도 저를 인정해주었고요.
초보 작가들이 자신의 경험 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부끄럽고 초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쓴다고 하면, 뭔가 대단한 주제가 필요하다고 짐작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글은 오직 작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할 때 가능합니다.
하찮은 인생은 없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삶은 없습니다. 개인의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 감는 그 날까지 모두 소중하고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삶을 인정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인생 가치를 전할 수 없습니다.
작가라는 직업이 숭고한 이유는, 먼저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 후 세상과 타인에게 살아갈 이유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인생을 안아야 할 때입니다.
누가 뭐래도 '나의 글'을 쓰기 바랍니다. 세상에 떠도는 글을 퍼나르기 할 거라면 무엇하러 글을 씁니까. 나와 타인을 동시에 위하는 길. 내 삶을 쓰는 사람이 작가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