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벗고
책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6년째다. 처음에는 '글 쓰는 세상을 위해서' 이 일을 한다고 생각했었다. 잘 쓰고 싶어하는 사람,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고 싶어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의 경험과 지식을 나눈다고, 그렇게 믿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위험한 믿음이었다. 내 수업에 참여한 사람이 책을 출간하면 '내 덕분'이었다. 만약, 포기하고 펜을 놓는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의 탓'이었다. 잘 되면 내 덕이고 못 되면 그들 책임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판단했었다. 비열하고 오만한 생각이었다.
나는 내 자신을 위해 책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거였다. 내가 가르친 사람이 책을 출간하면 기뻤다. 진행 과정이 신통찮으면 내가 불편했다. 나는 나의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위해, 그들에게 글 쓰는 법을 가르쳤던 것이다.
내 자신을 위해 뭔가 한다는 말을 이기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할 줄 알아야 하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 남의 것을 빼앗거나 가로채거나 피해를 입혀가면서 자신의 몫을 챙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이기적이고 못된 행동이겠지만, 순수하게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행위는 당당해야 마땅하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말이 제법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도 문제다. 이 말은 뒤에 가면 항상 비판과 불만의 원인이 된다.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마인데! 돌려주지 않으면, 보상해주지 않으면, 비난과 원망의 화살을 쏘아붙인다.
'위한다'는 말은 언제나 순수해야 한다. 보답과 감사를 돌려받겠다는 의도가 털끝만큼이라도 작용하면, 그것은 희생과 헌신이라는 숭고함이 아니라 장사꾼의 거래가 되고 만다.
나는 나를 위해 살아간다. 내 글을 읽고 만족하는 독자를 보면 내 기분이 좋다. 그래서 글을 쓴다. 내 강의를 듣고 도움 된다는 수강생들 보면 흐뭇하고 기쁘다. 그래서 강의를 한다.
내 자신을 위한 삶에는 두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어떠한 경우에도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타인의 것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 둘째, 무슨 일을 하든 애초부터 돌려받을 생각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신을 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결국은 타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내가 이토록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한 후부터 다른 사람도 각자 귀한 존재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살다 보니, 나를 보는 사람도 생겨났고, 나를 따르는 사람도 있고, 자신을 위하는 사람도 점점 늘어났다.
남편을 위해서, 아내를 위해서, 부모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사람들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가.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힘들고 괴롭다는 말 또한 입에 달고 사는가. 이 얼마나 모순되고 파렴치한 말인가.
'위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행복한 표현이다. 진정으로 위할 수 있을 때, 고통과 시련은 사라진다. 힘들지만 너를 위해서. 이런 말은 이미 조건부 사랑이며 거래이자 교환이다.
사람 뿐만 아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에 있어서도 '위한다'는 말을 바로잡아야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 책을 읽고, 유명해지기 위해서 글을 쓰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일을 하고, 무엇을 위해서 결혼하고 노력하고 살아가고...... 조건부 인생은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만든다.
그저 나를 위해서. 오직 내 자신을 위해서. 하루의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오직 나를 위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좀 더 신중하고 현명하고 지혜로울 수 있을 터다.
"이은대씨, 당신의 사업을 위해 몇 가지 제안을 드리조자 합니다."
됐다. 그냥 가라. 얼마나 시간이 남아돌면 나를 위해 제안까지 하는가. 내 사업 위하는 시간에 당신 인생 조금 더 위해야지. 단칼에 거절한다.
온라인상에 떠다니는 수많은 광고가 이런 식이다. 널 위해 돕겠단다. 미치겠다. 대한민국에 부처님이 이리도 많았던가.
'나를 위한 삶'을 살겠다고 선포하고, 당당해져야 한다. 일하는 이유도 나를 위함이고, 공부하는 이유도 나를 위함이고, 사랑하는 이유도 나를 위함이다. 본질을 인정하고 가식을 벗어던지면,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인생이 가벼워지면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고, 더 높은 곳에 이르면 진짜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남편 위해 저녁밥 차리지 말고, 내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아내 위해 선물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선물하는 것이다. 저녁밥 차리는 사람이 행복하고 선물 주는 사람이 행복하면, 저녁밥 먹는 사람도 저절로 행복하고 선물 받는 사람 기쁨도 두 배가 된다.
나를 위해서. 오직 나를 위해서.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