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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정성을 부치다

된장, 간장, 그리고 고추장

by 글장이


누나는 경기도 기흥에 살고 있다. 된장, 간장, 고추장이 다 떨어져간다는 말에 어머니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누나 나이 50이 넘었지만, 아직 장을 담글 줄 모른다. 일흔 여덟 어머니는 "그 나이 되도록 장도 못 담그냐"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며칠 동안 정성껏 장을 담그셨다. 피곤하다는 말도 힘든 내색도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듯 씩씩하게 일하셨다. 좀 짜다, 싱겁다, 열심히 간을 보면서 마치 생애 마지막 장을 담그는 듯 온 정성을 쏟아붓는다.


된장, 간장, 고추장을 각각 따로 포장했다. 여든 둘 아버지는 포장된 장을 담아 부칠 스티로폼 박스를 구하러 나가셨다. 재활용 처리장을 둘러 보고, 동네 고물상에도 다녀오셨다. 마침한 박스 하나를 손에 들고 개선장군처럼 돌아오셨다.


탄탄하게 잘 포장되어 쏟길 염려 전혀 없어 보였지만, 그럼에도 여든 둘 아버지와 일흔 여덟 어머니는 머리를 맞대로 이쪽저쪽으로 안전하게 장을 담아 넣었다. 생각보다 박스가 컸다. 빈 공간이 남았다.


"뭐라도 좀 채워 넣는 게 좋겠다."


아버지는 그 길로 나가셔서 마트에 다녀오셨다. 귤과 사과를 한 박스 사가지고 오셨다. 박스를 뜯어 귤과 사과를 꺼내고, 그것들로 스티로폼 빈 공간을 채우셨다.


아버지는 컴퓨터 앞에 앉으셨다.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그냥 우체국에 가서 택배 용지에 적어도 될 것을, 일일이 타이핑 쳐서 출력하고 오려서 스티로폼 박스 위에 살짝 붙여둔다.


"네가 수고를 좀 해줘야겠다."


어머니는 죄인처럼 내게 택배 발송을 부탁하셨다. 월요일이라 사람이 많을 테니 9시 맞춰 일찍 가는 게 좋겠다는 아버지 권유로 8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현관에서 박스를 양 손으로 들어올렸다. 많이 무거울 거라며 걱정하시던 어머니 말씀과 달리, 생각보다 크게 무겁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트렁크에 싣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문을 열기도 전인데, 우체국 앞에는 꽤 많은 사람이 손에 뭔가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8시 55분. 문이 열렸고, 사람들은 쏟아지듯 우체국 안으로 들어갔다.


포장대 위에 박스를 올려놓고, 우체국 택배 박스 5호를 집어 아래쪽을 봉했다. 그 안에 스티로폼 박스를 넣고 이중 포장했다. 출력해서 가지고 온 두 개의 주소지를 테이프로 깔끔하게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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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렸다. 일찍 온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내용물은 뭐에요?"

"장이랑 과일입니다."

"내일 휴일이라 모레 도착합니다."


3월 1일. 내일이 휴일이란 사실을 깜빡했다. 겨울 날씨 하루만에 장이 상할 리도 없고, 그냥 부쳐 달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성이 누나에게 닿는 가격은 팔천 구백 원이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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