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 다하기, 내려놓기
"아무리 고쳐도 마음에 안 들어요."
퇴고중인 작가의 말. 그 수고가 안타깝고 안쓰럽다. 이해한다. 공감도 된다. 하지만 내 입에서는 좋은 말 안 나온다.
첫째, "아무리"라는 말. 뭘 얼마나 고쳤길래.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퇴고에 최선을 다했다는 뜻인가. 자기 입으로 최선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뜻. 한두 번 고쳐 썼을 뿐이라는 증거다.
둘째, 자기 마음에 들면 충분하다는 뜻인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작가 스스로 만족스러운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작가는 자기 수준에서 정성을 다할 뿐. 글에 완성은 없다.
셋째, 마음에 안 들면 더 고치면 된다. 손을 털면서 할 말은 아니다. 더 할 수 있으면 더 하고, 더 못하겠으면 더 못하겠다 말하면 그 뿐. 최선을 다했고 할 만큼 했으니 하자 있어도 아무 소리 하지 마라, 미리 벽 치는 거다.
두 가지를 전하고 싶다. 먼저, 말이나 글은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사과를 할 때는 진정성이 있어야 하고, 못 했다 할 때는 정직하게 설명해야 하며, 감사를 표할 때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형식적인 인사, 방어적인 표현, 돌려치는 말들...... 이런 것들이 우리 얼굴에 가면을 씌우고 삶을 무겁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또 한 가지. 무슨 일이든 원칙과 기준을 세워야 한다. 원칙에 맞으면 힘들어도 기꺼이 해야 하고, 기준에 부합하면 어려워도 돌파해야 마땅하다. 원칙과 기준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원칙과 기준 아예 없는 사람 천지고, 나름 두 가지 가지고 있는 사람도 '예외' 두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퇴고의 원칙과 기준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퇴고는 총 3회 진행한다.
퇴고는 O월 O일까지 완료한다.
최소한 A, B, C는 확실히 잡는다.
쓸까 말까 망설여지는 부분은 무조건 뺀다.
무슨 말을 전하는 것인가? 핵심 메시지 만큼은 확실하게 정리한다.
위 다섯 가지를 원칙과 기준으로 세웠다면,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초보 작가가 모든 걸 다 잡을 수는 없다. 퇴고에서 해야 할 일 백만 가지 넘는다. 그거 다 붙잡고 있으면 절대로 책 못 낸다. 설령 책 낸다 하더라도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랄 텐데. 차라리 확실한 원칙과 기준 세우고, 최소한 그것들만이라도 확실하게 잡는 것이 독자 위하는 길이다.
"아무리 고쳐도 마음에 안 들어요."
잔소리는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아주 좋아한다. 어쨌든 초고를 완성했고, 나름 퇴고를 진행했으며, 자기 글에 애착을 갖고 있고, 좋은 책을 내려는 진심 느껴진다.
"힘들고 어려워서 못하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보다 훨씬 낫다.
만약 누군가 "다 고쳤어요! 제가 봐도 끝내줘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글을 절대 읽지 않을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다. 기름이 줄줄 흘러넘칠 게 뻔하다. 내용도 문장도 모두 훌륭하다 하더라도, 작가의 태도가 엉망이기 때문에 볼 필요도 없다. 그런 글은 세상에 나오지 않는 편이 낫다.
우리는 초보 작가다. 자신이 쓴 글에 만족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그래서 퇴고는 '완성하는' 게 아니라 '중단하는' 거라고 했다. 나름의 원칙과 기준에 따라 정성껏 작업했다면, 그만 놓아줄 수도 있어야 한다. '완벽한 작품'을 탄생시키려는 게 아니라 '나의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일. 이미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작품만 인정하는 독자도 많겠지만, 나와 내 글을 통해 도움 받는 독자도 존재한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
말을 바꿔 보자. 내가 쓴 글이 흡족할 정도로 쓴다. 그럴 수 있을까? 세계적인 거장들도 자신의 글을 소개할 때는 부족하고 모자란다고 말한다. 겸손도 없진 않겠지. 그러나 모든 거장들이 무조건 겸손하기만 한 건 아닐 텐데. 다들 자신의 글을 똑바로 볼 줄 안다는 뜻이다. 세상에 완벽한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부족하고 모자랄 테지. 그럼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완벽한 글을 쓰기 위해 더 노력하면서 그 때가 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책을 내서는 안 된다? 세상에 책 한 권도 안 나오겠다.
여기서 필요한 개념이 '핵심 독자'다. 이은대가 쓰는 글은 누가 읽을까? 토니 라빈스? 장석주? 김 훈? 조정래? 글쎄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나와 비슷한 수준의 독자들 혹은, 나보다 문해력이 부족한 이들이 공감이나 배움의 용도로 내 책을 읽지 않을까. 그거면 충분하다.
'내'가 쓴 글은 나와 비슷한 독자들이나 내게서 배우려는 이들이 읽을 거다. 그러니, 부족하고 모자란 점에 집착할 게 아니라 하나라도 더 도움을 주려는 마음으로 쓰는 태도가 타당하다. '잘 보이려고' 쓰는 게 아니라, '돕기 위해' 쓴다는 말이다. 겸손도 중요하지만 배려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상상해 보라. 누군가 옆에 와서 "당신, 왜 이렇게 글을 못 쓰냐!"라고 타박을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실제로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이런 말 듣고 기분 좋은 사람 어디 있겠는가? 남한테 들으면 속상한 말, 자신에게 하면 안 된다. 부족하고 모자라도 잘했다 해줘야지. 기특하다 해줘야지. 수고했다 말해줘야지. 내가 나를 업신여기는데 누가 나를 인정하고 칭찬하겠는가.
"잘한 게 있어야 칭찬하지요."
글 한 편 쓰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 줄 아는가? 남들은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시작도 못 한다. 어찌 됐든 우리는 오늘 한 편의 글을 완성하지 않았는가. 삶을 돌아보고, 생각도 정리하고, 다른 사람한테 도움 주겠다는 마음을 잠시라도 먹었다는 것.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초보 작가라는 사실이다.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하는데, "엄마, 난 아무리 걸어도 똑바로 걷지 못하겠어요!" 라고 징징거린다면 그게 정상이겠는가. 그런 아기한테 "넌 그만 걸음마를 포기하는 게 좋겠다!"라고 가르치는 엄마 아빠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한 걸음만 떼도 박수와 환호를 질러야 한다. 이것이 '초보'의 특권이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말기를.
마지막으로 독서를 권한다. 책 읽어야 한다. 그냥 설렁설렁 읽는 정도가 아니라, 치열하게 뜯어 먹어야 한다. 쓰는 사람은, 읽지 않으면 헛일이다. 입력 있어야 출력도 되는 법. 당장 책 한 권 읽는다고 글쓰기 실력 달라지는 일 없겠지만, 누적되는 독서량은 반드시 자기 글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초보 작가들은 보통 글쓰기/책쓰기 관련 도서를 많이 선택하는데, 그보다는 심리학이나 철학 책 읽는 게 훨씬 도움 된다. 적어도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 일단 생각이 깊어진다. 여기서 50점 먹고 들어간다. 다양한 표현도 배운다. 비유도 는다. 심리학과 철학. 잊지 마시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줄거리 독서 금물이다. 무슨 말을 하는가? 이런 건 글 쓰는 사람한테는 두 번째 문제다. 문장을 읽어야 한다. 문장 하나 가지고 밤 새워야 한다. 왜 굳이 이 자리에 이 문장을 썼을까?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가? 이전 문장은? 다음 문장은? 그래서 한 문단의 기준은? 이렇게 물고 늘어져야 글쓰기에 도움 받는다. 이른바 문장 독서다.
지금 이 포스팅, 내 마음에 흡족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더 쓰고 싶은 내용 많고, 덜어내고 싶은 표현도 있다. 그러나 한 번 다듬고는 멈춘다. 이 포스팅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또 다음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정성 담았으니 발행 버튼 누른다.
"아무리 고쳐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냥 발행 버튼 누른다. 인생 무너지지 않는다. 재난 문자 안 온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