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어렵고 힘든 길을 가라
한 번 강의할 때 두 시간씩. 일주일에 세 번. 한 달에 4주. 총 12회, 24시간. 주 1회 문장수업 한 시간씩. 한 달 4시간. 합하면 28시간. 천무, 특강, 공저 프로젝트, 전자책 수업까지 모두 더하면 월 평균 25일. 거의 매일 강의하고 있습니다. 복입니다.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이렇게 많은 강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제 강의를 듣는 사람이 그 만큼 많다는 사실입니다.
수강생들에게 감사합니다.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작가와 강사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이들이죠. 그들이 없다면 저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합니다. 두 시간 강의를 위해 스무 시간 준비합니다. 강의 전에 리허설도 빠트리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같은 강의 세 번 하는데도, 할 때마다 미리 연습합니다. 두 시간을 2분처럼. 더듬거리지 않고, 버벅거리지 않고, 지각도 없습니다. 강의 마치면 온몸에 진이 빠집니다. 바로 일어서지 못해 잠시 앉아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강의를 하고 나면, 수강생들은 제 강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즉시 실천에 옮길까요? 글쓰기 방법을 배운 대로 적용하고, 매일 꾸준히 글을 쓰고, 복습하고, 고치고, 나름 연구하고 노력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공부하고 연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강의로 끝입니다. 좋은 말로 돌려칠 것도 없습니다. 팩트니까요. 강의를 들었다고 해서 모든 걸 실행에 옮기는 사람 몇이나 되겠습니까.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짚고 가야 합니다. 복습을 하든 연습을 하든 그것은 수강생 문제입니다. 저는 코치로서 강사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죠. 물론, 저는 그들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고 책을 내도록 도와줄 의무가 있습니다. 허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위해 대신 글을 쓸 수는 없습니다. 동기를 부여하고 방법을 소개하고 길을 안내하는 것은 제가 마땅히 해야 할 몫이지만,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들의 선택입니다.
무책임한 소리 같나요? 나몰라라 하는 것 같나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의무와 권리와 책임이 있습니다. 강사의 의무는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 것이고요. 강사의 권리는 정당한 수강료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강사의 책임은 저를 믿고 따르고 공부한 사람들에게 결실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수강생의 의무는요? 공부하는 겁니다. 수강생의 권리는요?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수강생의 책임은요? 공부하지 않은 결과, 공부한 결과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죠.
어느 한 쪽으로 기울면 책임 전가가 됩니다. 무책임이 됩니다. 때로 폭력이 되기도 하고, 억울한 누명이 되기도 하고, 갈등과 오해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해야 할 몫을 다하면 서로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 코치가 다 알아서 고쳐주고 깔끔하게 정리까지 해주는 것 아닌가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당당하고 눈빛마저 흔들림 없더란 사실입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마이클 조던의 코치가 대신 경기를 뜁니가? 타이거 우즈의 코치가 대신 골프를 치나요? 이봉주 선수의 코치가 마라톤 대회에 대신 나갑니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코치가 아닙니다. 글을 대신 다듬어주고 고쳐주면 그게 대필이지 무슨 코치입니까.
출판사에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정도는 잡아줄 수 있겠지요. 글 쓰는 법 배우러 와가지고 공부는 안 하고 싹 다 코치가 대신 해줄 거라고 믿는 사고방식은 그의 삶을 의심하게 만드는 논리입니다.
어떻게 고치는 게 더 나은가? 왜 그러한가?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문법과 문맥과 구성을 알려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배운 후에 자신이 직접 수정하고 다듬으면서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켜 나가는 겁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를 배울 때도 교사나 학원장이 시험을 대신 봐주지는 않습니다.
심각한 것은,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멋적은 표정도 아니고, 부끄러운 말투도 아니고, 지극히 당당하고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그 태도. 이쯤 되면 가르치고 안내해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생각과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글을 쓸 때는 순서가 있습니다. 기획을 하고 초고를 쓰고 퇴고하고 출간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단계가 무엇일까요? 네, 맞습니다. 퇴고입니다. 고치고 수정하고 다듬는 작업이 가장 어렵고 힘듭니다. 포기하는 사람 대부분이 퇴고 단계에서 무너집니다. 그 만큼 고통스럽기까지 한 것이 퇴고입니다.
가장 어렵고 힘든 퇴고 단계를 누군가 대신 해준다면, 그럼 이 책은 누구 책입니까? 그렇게 남의 손으로 다듬은 작품을 자기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직접 정성껏 작업해야 마땅하겠지요. 코치는 퇴고 방법과 요령, 그리고 예시 등을 안내하고 글이 더 좋아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책 한 권 출간하고 나면 희열이 느껴집니다. 성취감도 크고요. 눈물도 납니다. 독자 앞에 서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내 삶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벅찹니다.
이런 마음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힘들고 어려운 과정 겪으며 정성을 쏟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과정을 겪지 않은 사람은 아무런 보람 느낄 수 없습니다. 누가 대신 해준다고 해도 손사레를 치며 기꺼이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해야 합니다.
만약 제가 퇴고를 대신 해주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제가 퇴고하는 동안 그 사람은 뭘 하고 있을까요? 글 공부를 할까요? 고민하고 연구할까요? 아니겠죠. 그냥 자신의 일상을 살아갈 겁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다시 글을 써도 실력 하나도 늘지 않겠지요. 실력이 늘지 않으면 작가 스스로도 노력하지 않은 것이고, 코치도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겁니다. 결과는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퇴고해서 글이 좋아졌다면, 그 사람이 저한테 감사해 할까요? 글쎄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아마, 조금의 문제라도 발생하면 제 탓으로 돌릴 겁니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뭔가를 대신 해주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조금 부족해도, 조금 모자라도, 자신의 글은 직접 쓰고 고치고 끝을 봐야 합니다. 코치는 방법을 가르치고 길을 안내하고 예시를 보여주고 동기를 부여합니다. 서로 힘을 합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어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공지능 판치는 세상입니다. 인공지능이 나를 대신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는 일에 인공지능이 도움이 되고 도구가 되어야 마땅하지요. 내가 주인이어야 합니다. 내가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쉽고 편하게 가려고 하면 실력 늘지 않습니다. 기꺼이 어렵고 힘든 길 선택해야 합니다. 곁에서 누가 대신 해주겠다 말해도 직접 해보겠다 나서야지요. 못하면 좀 어떻습니까. 내 실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앞으로 점점 나아지는 모습 보이면 그게 최고지요.
책 한 권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실력을 갈고 닦는 지극한 정성과 노력. 이것이 우리 삶을 점점 좋아지게 만드는 방법일 테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