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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삶이라 다행입니다

오늘도 세상을 쓰다

by 글장이


글 쓰는 것이 나의 일이라서 참 다행이다. 강의를 하고 돈 벌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행복인지 모르겠다. 다른 일은 할 수 없고, 할 줄도 모른다. 이제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었고, 강연가로 살고 있다. 남은 인생도 지금처럼. 그래서 평온하다.


4층에 살고 있다. 오늘부터 3층에 공사가 시작된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파트가 통째로 무너지는 것 같다. 윙윙 드륵드륵 쿵쿵 쾅쾅 징징징징징징. 온갖 연장으로 부수고 뜯어내는 작업 소음이 지진 못지않다.


내려가 보았다. 일꾼은 여섯 명이다. 오늘은 작업 첫 날이라 철거 위주로 진행될 모양이다. 거실 벽면을 뜯어내고, 욕실 장비를 부순다. 천정을 내려앉히고, 바닥 인테리어를 몽땅 들어낸다. 이미 먼지가 뿌옇다.



현관 앞에서 얼굴을 내밀어 공사 현장을 보고 있으니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묻는다. 무슨 일로 그러시죠?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집으로 올라왔다.


오래 전 공사판에서 일할 때, 가정집 철거도 몇 차례 했었다. 부수고 뜯어내고 버렸다. 누가 살던 집일까? 어떤 사람이 새로 와서 살게 될까? 삶의 흔적을 가차없이 지운다는 것이 서글펐고, 보금자리를 새로 꾸민다는 생각에 뿌듯했었다.


이 곳에 살던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빚을 감당하지 못해 도망간 것일까? 아니면 사업 번창해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간 것일까? 가정집 공사를 할 때면 구조물보다는 사람에 더 관심이 갔다. 집을 잃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집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공사 소음은 감정을 날카롭게 만든다. 이웃간 다툼도 흔히 일어난다. 나도 예전에는 다르지 않았다.


막노동 해 보고서야 알았다. 공사 장비들은 각자의 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소리 거칠고 투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현장은 위험하다. 그래서 소리가 크게 나야 한다. 주변에서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도록 날카롭고 크고 거세야 한다.


공사 소음은 곡소리다. 잘 버티며 살아준 공간의 끝을 위로하고 떠나 보내는 장송곡이다. 꺼이꺼이 소리를 내는 것이 마땅하다.


공사 소음은 일꾼들의 속풀이다. 바닥에서의 인생. 잡부로 살아가는 하루. 내 집은 없는데 남의 집은 정성껏 다루어야 한다. 그 모든 가장의 한과 설움이 담겼으니, 현장은 늘 굉음으로 가득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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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보이면 글을 쓴다. 사건이 일어나면 글을 쓴다. 세상이 떠들썩하면 글을 쓴다. 쓸 수 있어 다행이다.


드릴의 굉음이 바닥을 뚫고 올라올 듯하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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