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쁨과 형벌 사이에서

일의 의미

by 글장이


새벽 5시 40분이 되면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7시까지 출근해야 했습니다. 말이 7시지, 적어도 6시 40분까지는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있어야 상사나 선배들로부터 눈치를 받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출근 후에는 일이 쏟아졌습니다. 책상 왼쪽에는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였지요. '다 끝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일했지만, 사실 그 '일'은 끝이 없었습니다. 하나를 끝내면 다른 지시가 떨어졌고, 또 하나를 끝내면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주 5일제 시행 전이었습니다. 토요일은 물론이고 일요일에도 출근했습니다. 당연히 가정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지요. 여름 휴가 3박 4일이 유일한 여유 시간이었고, 그나마도 회사 업무 생각에 편히 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지금 제 기억에 남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 무슨 일을 했는지, 그 일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살았는지...... 뭔가 하나라도 내 인생 어떤 의미나 가치로 남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큽니다.


아침 5시 30분까지는 인력시장에 도착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겨우 일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루만 일을 놓쳐도 먹고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뭐 어떻게든 입에 풀칠이야 했겠지요.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산다는 막노동 현장에서 성실함마저 놓치면 계속 일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때로 주변 사람들이 묻습니다. 겨울과 여름 중에서, 막노동 하려면 언제가 좀 낫냐고 말이죠. 웃기는 소리입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똑같이 힘듭니다. 추워서 힘들고 더워서 힘듭니다. 비교하고 가려낼 만한 수준이 아니죠. 땅이 얼어서 힘들고, 땅이 물러서 힘듭니다. 옷을 껴입어서 힘들고, 옷을 헐벗어도 힘듭니다.


하기 싫었습니다. 새벽마다 한숨과 욕설이 절로 나왔습니다. 극도의 부정으로 하루를 시작했지요.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나. 일당으로 하루를 연명해 가는 나 자신이 서글펐고, 그런 가장을 지켜보며 일말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가족이 불쌍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직장생활과 막노동, 둘 다 '형벌'이었습니다. 하루의 시작이 괴로웠고 하루의 끝이 불안했습니다. 매일 힘들고 어렵고 무거운 날들. 언젠가 끝이 날 거란 막연한 기대와 희망 속에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는' 인생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작가와 강연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합니다. 글 쓰고 책 내고 싶은 이들에게 방법과 길을 안내합니다. 힘들지 않냐고요? 글쎄요. 이렇게 답하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새벽 4시에 벌떡 일어납니다. 저도 모르게 은근히 웃음이 납니다. 욕실로 향합니다. 찬물에 샤워 합니다. 맑은 정신으로 책상 앞에 앉아 세상과 타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씁니다. 제 경험을 담기도 하고, 지식과 노하우를 적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책을 읽습니다. 책 쓰는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읽는 것이 큰 도움 됩니다. '독서 해야 한다'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제 일이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읽고 빠져듭니다. 강의자료도 준비합니다. 이렇게 전하면 알아듣기 쉬울까, 저렇게 전달하면 쓰고 싶은 마음 생길까. 수강생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자료 만듭니다. 제 강의를 듣고 작가가 된 사람도 많고, 세상 바라보는 눈 달라졌다며 행복해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돈도 많이 법니다. 마음도 편안합니다. 지금 제가 하는 모든 일은, 기쁨이고 축복이고 선물입니다.


사람은 평생 일하며 살아갑니다. 경제생활 측면은 당연한 것이고요. 자기표현, 자기만족, 자아실현 등 다양한 측면에서도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합니다. 인생 절반 이상 일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 일에서 행복할 수 있어야 마땅하겠지요.


일은 형벌이 될 수도 있고 기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이 형벌일 때, 저는 마지못해 살았습니다. 일이 기쁨이 되고 나니, 살 맛이 납니다.

스크린샷 2023-06-27 09.05.05.png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형벌 같은 일을 계속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일이 기쁨인지조차 모른 채 불평만 하면서 사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가. 한 번쯤 멈춰 생각하는 시간 꼭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책쓰기 수업 명함 신규.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