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가벼운 인생
'너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글을 쓸 때마다 '너무'라는 말을 붙이는 사람 있습니다. 너무 화가 났다, 너무 더웠다, 너무 싫었다, 너무 힘들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너무'라는 말은 과장하거나 강조할 때 쓰는 말입니다. 써도 되느냐 안 되느냐 정답을 찾듯이 접근하지 말고,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거지요.
'너무 더웠다'와 '더웠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섭시 몇 도쯤 되면 '너무' 더운 걸까요? '너무 싫었다'와 '싫었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요? 얼마나 싫으면 '너무' 싫은 걸까요?
과장하거나 강조했다는 사실은 알겠는데, 그 기준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모호합니다. 애매합니다. 독자는 그냥 그런 줄 알아야 합니다.
"얼굴이 마르지 않는 샘 같았다. 손수건으로 계속 땀을 닦는데도 이마에서부터 줄줄 땀이 흘러내렸다."
뭐 이 정도로만 써도 충분히 '너무 더운' 표현이 되지 않겠습니까. '너무'라고 설명하지 말고, 더운 상황과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습니다. 독자를 '이해'시키려 하지 말고, 독자로 하여금 더운 날씨를 직접 경험하게 해주는 글을 써야겠지요.
엄청 화났다, 상당히 화났다, 너무 화났다, 진짜 화났다,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죽고 싶었다, 환장하는 줄 알았다, 돌아버릴 정도였다, 화가 폭발했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글을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화가 났다'는 내용으로 글을 쓰다 보면 점점 더 화가 납니다. 글을 쓰는 때는 이미 화가 난 지 꽤 지난 시간일텐데, 글 쓰면서 지나간 시간을 다시 떠올려 감정을 자극하는 셈이죠. 화가 났다는 표현을 한 번도 쓰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화가 난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팀장은 서류를 휙 집어던졌다. 주변 동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허리를 숙여 바닥에 흩어진 서류를 한 장씩 주웠다. 그러고나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컴퓨터 전원을 켜고는 탕비실에 가서 커피 한 잔을 타가지고 왔다. 한 모금 마셨다. 무슨 맛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담배가 필요했다. 흡연실로 갔다. 길게 한 모금 빨아당긴 후에 휴대전화를 꺼냈다. 아무래도 오늘 늦을 것 같아. 아내의 한숨이 들렸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다들 내가 별로인가 보다."
과장이나 강조를 목적으로 하는 부사나 형용사를 절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퉁치는 글쓰기 습관을 뿌리뽑기 위해서입니다. 위 예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너무 화가 났다'고만 쓰면 간단하지요. 작가는 간편할지 모르겠지만, 독자를 그 심정으로 제대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글 쓰는 이유는 독자를 위함인데, 작가만 아는 글을 백날 쓰면 뭐하겠습니까.
둘째, 빨리 쓰고 끝내려는 습성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글 쓰고 싶다 해놓고 빨리 끝내려 합니다. 작가 되고 싶다 해놓고 자꾸만 다른 걸 하고 싶어 합니다. 우직하게 앉아서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고, 그 순간에 보고 들은 것들을 하나씩 살피는 과정을 통해 쓰는 힘도 동시에 기르는 것이지요.
셋째, 무엇보다 인생을 단순하고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말과 글은 언어입니다. 언어가 삶을 만들지요. '화가 났다'는 표현과 '서운했다'는 말은 전혀 다른 경험을 만듭니다. '화가 너무 많이 났다'는 말과 '담배를 두 대 피웠다'는 표현은 전혀 다른 감정 상태를 유발합니다. 글을 거칠게 쓰면 성질도 거칠게 바뀝니다. 글을 품위 있게 쓰면 인생에도 품위가 더해집니다. 과장이나 강조를 줄이면, 삶도 담백해집니다.
"더워 죽겠다!"고 쓰지 말고, "날씨가 7월답네!"라고 써 보세요. 나도 나답게 살게 될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