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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글 쓰는 사람으로

by 글장이


마음은 아직 이십대에서 조금도 선을 넘지 않았는데, 한 번씩 거울을 볼 때마다 나도 중년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젊은 시절, 사업 실패로 많은 시간을 고통과 좌절 속에 보냈지요. 돌이켜보면, 그 숱한 절망들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조금 더 힘을 낼 수는 없었을까. 조금 더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낼 수는 없었던 것일까. 후회와 한탄 속에 가슴을 어루만져 봅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요. 성공, 야망, 성장, 꿈, 목표, 그리고 현실. 이런 단어들로 점철된 오늘과 지금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또 한 번 후회와 아쉬움들을 만들어내는 듯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똑같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살면서 이루었던 모든 것들 잃고 감옥에 앉아 있었을 때, 속으로 다짐한 바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픈 것이 후회라는 감정이구나. 앞으로 남은 삶에서는 두 번 다시 후회할 만한 짓을 저지르지 않아야겠다. 5미터 담장 밖으로 나와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매 순간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살았습니다.


머리숱이 많이 줄었습니다. 한 번씩 머리를 감고 거울 앞에 서서 드라이기를 돌리면, 듬성듬성한 머릿결 사이로 민머리가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남자다 보니 그리 심각하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요. 이제는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나이 들었구나 실감하게 됩니다.


얼굴빛도 점점 탁해집니다. 피부가 좋지 않아 약도 많이 먹고, 딱히 관리라는 걸 하지도 않습니다. 잠도 다른 사람에 비해 극히 적게 자는 편이고요. 그러다보니, 얼굴에도 흙빛이 돌고 잡티도 많아졌습니다. 림프종 때문에 상처와 흉터도 많고요. 깔끔하고 탄력적인 피부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제법 나이가 많이 들었구나 느끼게 됩니다.


눈도 침침합니다. 매일 책을 읽고,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씁니다. 그 시간이 꽤 많습니다. 시간을 보고 읽기를 멈추는 게 아니라, 눈이 따가우면 독서를 멈춥니다. 눈에 뭔가 낀 것처럼 자꾸만 깜빡이게 되면, 키보드에서 잠시 손을 떼고 눈두덩이를 만지곤 하지요. 노화 현상이란 걸 알면서도, 자꾸만 '원래의 눈'을 갖기를 욕망합니다.


누가 그러데요. 관리 좀 하라고요. 머리숱도 관리하고, 피부도 신경 쓰고, 눈에 좋은 약도 좀 먹으라고 말이죠. 그러니까, 자연 노화 현상을 인위적으로 막으라는 뜻입니다. 세월이 좋으니까 어느 정도는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권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문득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으로 20년쯤 후에 내 모습은 어떨까. 여전히 '늙어가는' 나를 멈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까. 아니면, 이마 주름살마저 내 삶으로 품고 있는 그대로의 '노인이 된 내 모습'을 사랑하며 글 쓰고 있을까.


저도 멋지게 나이 들고 싶습니다. '멋지다'는 말은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겠지요. 적어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노인'이 되려 합니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테지요. 한 번 해 보고 싶습니다. 젊은 날은 '실패'로 흘려보냈습니다. 노후에는 '성공'보다도 '당당한' 일상을 보내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을 도우며 살아가는 여생. 생각만 해도 근사합니다.


아버지는 극보수 성향이라 거의 매일 종북 좌파 세력에 대한 분노와 비난으로 하루를 보내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불편한 다리를 끌고 다니면서도 파룬궁 자기 수련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합니다. 아내는 연예인 소식을 즐거움으로 삼고, 또 하나뿐인 아들에 대한 기대를 낙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스무 살이 된 아들은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라는 인생 최고의 '여유와 자유'를 즐기고 있습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 자기만의 즐거움과 낙을 찾아 누리고 즐기며 살아가면 그만이겠지요. 그럼에도 저는,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습니다. 잃어버린 세월이 큽니다. 만약 이대로 제 삶이 저문다면, 아마 하늘나라에 가서도 계속 '후회'라는 걸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싶습니다. 글을 쓰면서 더 많은 이들에게 저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도 닦는 심정으로 살고 싶다는 게 아닙니다. 지난 10년간 매일 책 읽고 글 쓰면서 살아 봤거든요. 거기에다 강의까지 더해 제 삶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가치롭고 의미 있었습니다. 완전히 망해서 두 번 다시 일어설 수조차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제 삶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풍요로운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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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다 빠져서 보기 민망할 정도가 되어도, 얼굴에 주름이 지고 낯빛이 퇴색해도, 눈이 침침해서 계속 깜빡거리게 되더라도, 저는 제가 쓰는 글로써 세상과 당당히 마주하려 합니다. 다듬고 관리하면 아주 조금은 나아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럴 시간에 차라리 책이라도 한 줄 더 읽고 글이라도 조금 더 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은 글로 말해야 합니다. 글 쓰는 사람은 글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글 쓰는 사람은 글 쓰는 행위로서 행복해야 마땅할 테지요.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잘생긴 사람' 말고 '잘사는 존재'로, 후회를 줄여 보려 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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