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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마치면 나는 침묵한다

나의 영역에서

by 글장이


두 시간짜리 강의를 준비하는 데 보통 스무 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파워포인트 약 100매 분량입니다. 단순히 자료만 만드는 거라면 두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직접 강의를 해 보면 어색하거나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꽤 많거든요. 글쓰기/책쓰기에 필요한 내용을 찾아 정리하고, 자료를 만들고, 직접 말로 해 보고, 다시 고치고 다듬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통상 스무 시간 정도가 걸리는 셈이죠.


자료를 완성하고 나면, 강의 시작 전 두 시간 동안 리허설을 합니다. 웬만하면 두 시간 딱 맞추려고 노력하는데요. 어쩌다 5분 일찍 또는 5분 늦게 마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제 강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딱 두 시간에 맞춥니다. 연습하지 않으면 시간 못 맞춥니다. 남거나 부족하거나. 강사가 미리 연습하지 않아서 시간을 못 맞추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지요.


"음...... 어...... 아......"

이렇게 뜸들이는 시간도 최소화 합니다. 연습에 또 연습을 거듭하면, 강의 중간에 막히는 일 거의 없거든요.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술술 뻗어나가야 합니다. 수강생들 귀한 시간이니까요.


정규수업은 일주일에 3회차씩 총 4주 진행합니다. 매월 12회 강의합니다. 주 1회 문장수업도 합니다. 총 16회입니다. 무료특강도 하고 초대특강도 하고 독서법이나 스토리텔링 등 과외 특강도 합니다. 월 2회 독서모임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빼곡합니다. 빈틈 없습니다.


두 시간 강의를 마치고 나면 기진맥진입니다. 온몸에서 기가 쑤욱 빠져나가는 듯합니다. 벌떡 일어서지 못해서 잠시 숨을 고르며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침묵합니다.


침묵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하고 강의했다 하더라도 수강생들이 제가 전하는 바를 모두 흡수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나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강의 종료와 동시에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제가 전하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날씨, 결과, 사건, 사고, 그리고 다른 사람. 이러한 것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생각과 말과 행동과 인식 뿐입니다.


열심히 강의 준비를 하고, 자료를 찾고, 연습과 반복 게을리 하지 않고, 혼신을 다해 강의하는 것.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은 수강생들의 몫입니다. 제가 열심히 강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저의 통제 영역 밖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상당히 무책임한 소리 같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준비와 실전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결과에 연연하는 겁니다. 내 할 몫을 다하고 나면 저절로 내려놓게 됩니다. 수강생들이 당장 글을 쓰지 않아도 제 마음은 평온합니다. 다시 준비하고 연습해서 또 최선을 다해 강의할 겁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수강생들 마음도 움직이게 마련이고요.


인생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에는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야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과감하게 놓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소홀히 하면서 할 수 없는 영역에 목을 매고 살아가지요.


바라는 게 있나요?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그걸 갖기 위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그런 삶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또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에 대해 답을 적어 보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할 수 있는 일"에만 전념하고 집중하고 몰입하는 거지요.


많은 이들이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는데요. 사실은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와 집중력"이 없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으니까, 정작 해야 할 일들에 쏟아부을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할 수밖에 없지요.


작가가 되고 싶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매일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글을 잘 쓰는 것, 베스트셀러, 유명해지고, 인생 역전하고, 돈 많이 벌고...... 이런 것들은 나의 영역이 아닙니다. 작가는 그저 글 쓰는 사람이지요. 베스트셀러 쓰려면 어렵고 힘들고 복잡하고 걸리는 것도 많습니다. 그냥 글 한 편 쓰는 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한 일이고요.


글은 쓰지 않고 베스트셀러만 쓰려고 하니까 인생이 무겁고 힘들고 지치는 것이지요. 삶은 스스로 그 무게를 만드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조금 가볍게 해서 훨훨 날아오르며 살면 더 좋을 텐데 말이죠. 커다란 짐을 어깨 위에 올려 놓고 무겁다 힘들다 계속 투덜거리는 인생이라면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밤 잠들기 전까지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입니다. 이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런데 왜 작가가 되고 싶다면서도 쓰지 않는 사람이 많은 걸까요? 통제할 수 없는 영역, 즉 "잘 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잘"이라는 부사는 나의 영역이 아닙니다. 독자의 몫이죠. 독자의 판단입니다. 독자의 권리를 작가가 취하려 드니까 쓰는 과정이 매번 어렵고 힘들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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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마치면 침묵합니다. 수강생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또 어떤 실행을 하게 될지는 그들의 몫입니다. 저는 제가 할 도리를 다 하였기에, 이제 제 안으로 침잠합니다. 모든 걸 쏟아부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비지땀이 흐르고 미소가 지어집니다. 잘했다! 수고했다! 칭찬하고 인정합니다. 그리고는, 다음 강의를 준비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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