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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Jul 29. 2023

즐거운 날보다 괴로운 날이 더 많은 이유

작은 나, 작은 일상, 큰 행복


대학 입시에 떨어져 재수했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합격 발표를 듣기 위해서는 ARS 전화를 하거나 직접 해당 대학교에 가서 벽보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집에서는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아서 길거리 공중전화 박스를 이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죄송합니다. 입력하신 수험번호는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불합격' 소식에 다리 힘이 풀리고 말았습니다. 혹시 내가 수험번호를 잘못 입력한 것은 아닐까. 동전을 집어넣고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습니다. 역시나 들려오는 음성은 같았습니다.


떨어졌다는 말을 아버지와 어머니께 어떻게 전해야 하나. 아직 졸업식 전이라 학교에도 가야 하는데,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이 수치는 또 어떻게 견뎌야 하나. 불합격 소식을 들은 날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친구들 대부분은 어느 대학이든 합격을 했고, 저는 재수학원을 알아 보아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당시의 제가 눈앞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한데요. 사실 당시의 저는 뭐 그다지 안타까울 것도 없었습니다.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거든요. 수업 시간에도 딴 생각이나 하고,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도 도망갈 궁리만 했고, 주말에도 늘어지게 잠만 잤습니다. 남들 눈에는 고3이라 나름 열심히 생활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실제로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겁니다.


합격 발표 소식을 듣기 위해 ARS 전화를 걸기 직전, 종교도 없는 놈이 기도를 다 했다니까요.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저를 뭐라고 생각했을까요. 별 미친 놈 다 있다 여겼을 것 같습니다. 공부도 하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결과만 좋기를 바랐으니, 이건 뭐 완전히 도둑놈 심보였던 거지요.


재수학원에 등록하고 다시 일 년 공부했습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제법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놀고 싶은 것도 참고, 주말에도 도서관에 가서 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일 년이 지난 후에 다시 입시를 치뤘고, 저는 지방에 있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수화기를 통해 전해오는 그 한 마디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재수 끝에 입시를 다시 치뤘을 때는 합격 발표를 확인하는 과정이 별로 떨리지 않았습니다. 왠지 꼭 붙을 것만 같았거든요. 시험 성적표를 수준에 맞는 대학과 전공학과에 지원했기 때문에 큰 이변이 없는 한 합격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일 년동안 공부 열심히 했고, 마땅한 성과를 낼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지요.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을 때는 다리 후들거리고 기도하고 별 쇼를 다 했습니다. 떨어졌다는 소식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절망했지요. 당연한 결과인데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슬퍼하고 우울해 했습니다.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한 후에는 마땅한 결과에 태연했습니다. 기분도 편안했고요.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좋은 결과를 바라고, 또 바랐던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절망하는 이 모든 마음가짐을 한 마디로 '욕심'이라 부릅니다. 욕심이란, 내게 주어진 몫보다 더 많고 크고 좋은 것을 바라는 마음이라 할 수 있겠지요. 정당한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이 받아가는 결실을 나도 하나 슬쩍 가지려는 염치 없는 태도입니다.


노력한 만큼 가져갈 수 있을 때, 사람은 보람을 느낍니다. 즐겁고 행복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요. 자신의 노력 이상의 것을 바랄 때, 인간은 불행해집니다. 실망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니까 결국 세상과 타인을 원망하게 되고요. 그러면서 인생 힘들고 괴롭다며 불평을 일삼으니까 점점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인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즐겁고 기쁜 날이 많을까요 아니면 힘들고 괴로운 날이 많을까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힘들고 괴로운 날이 훨씬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기울인 노력보다 항상 더 많은 것을 바랐던 탓입니다.


물론, 지금의 사회가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정확히 받는 세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마다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고,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인간들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시절이 어수선하다고 해도 그런 이유로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은 허무하게 무너질 뿐이겠지요. 남들이 어떻게 살든 내 인생은 반듯하게 살아내고 또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기대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모양새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첫째, 남들 다 하는 노력 정도로 성공이나 성취를 바라지는 말아야 합니다. 요즘은 다들 열심히 살잖아요. 똑같이 시속 50킬로미터로 달리면서 나만 특별히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런 시대에는 압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딱 일 년 정도만 미쳤다 생각하고 몰입하면, 자신이 바라는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둘째, 피해의식을 없애야 합니다. 난 열심히 했는데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파멸로 이어지는 겁니다. 제가 딱 그랬거든요. 뚜껑을 열어 보니, 남들도 다 저 만큼은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아니, 저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 많았습니다. 내 안에 갇혀 간장종지 같은 생각만 하고, 남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못난 사고방식만 고집하니까 인생이 엉망이 되었던 겁니다.


셋째, 종결의 개념을 없애고 무식할 정도로 계속 밀어붙여야 합니다.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이유로 멈추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난 8년간 [자이언트 북 컨설팅]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다가 멈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럴수록 더 확신을 가졌지요. 계속하기만 하면 이기겠구나!


넷째, 이 정도 대접은 받아야 마땅하다는 자만과 오만과 기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스스로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점수는 늘 거품이 끼어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직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평온한 마음과 행복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섯째,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집중할 때 초연할 수 있습니다. 대학 합격 자체가 아니라, 매일 공부하는 저 자신에게 만족하니까 결과를 확인하는 날 전혀 긴장하지 않을 수 있었거든요. 결과에만 연연하면 늘 불안하고 초조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괴로움보다는 즐거움이 많은 인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대한 기대를 절반으로 줄이고, 모든 결과를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높은 목표와 이상을 추구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현실의 나를 초라하게 여기곤 하지요. 현실과 목표 사이 간극 때문에 일상이 피곤하고 지치는 겁니다.


'작은 내'가 '작은 일상'을 살아간다는 마음가짐이 '큰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줍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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