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장이 Aug 07. 2023

독자는 기억하고 해석하고 상상한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세요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는 전과자, 막노동꾼이었던 제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자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았는데요. 그 중에서 대표적인 내용이 아래와 같습니다.


"저도 사업 실패해서 고생 많이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책 덕분에 힘을 내 봅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파산했습니다. 희망이 없어요. 그런데, 작가님 책을 읽고 한 번 해 보자 마음 먹었습니다. 응원해주세요."

"저도 육체노동 비슷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은 저만 바라보고 있지만,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이 책을 읽고 아주 조금 길을 찾게 된 것 같습니다."


독자들의 공통점은 "저도"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독자들은 그 책에서 자신을 본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독자가 누리는 권리이자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입니다. 스스로 기억하고 해석하며 상상합니다. 책은 작가가 썼지만, 그 책의 주인은 독자가 되는 셈이죠.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할까요? 네, 맞습니다. 독자 스스로 기억을 떠올리고 해석하며 상상할 수 있도록 쓰면 됩니다. 어떻게 해야 독자를 주인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바로 여기에서 '이야기'라는 키워드가 탄생합니다.


초보 작가들이 쓴 글을 읽어 보면, '설명하고 가르치려는 내용'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쁜 현상은 아닙니다. 적어도 그들은 독자를 위한다는 생각, 독자를 돕겠다는 마음은 갖고 있으니 말이죠. 그러나, 설명하고 가르치려는 글은 독자 마음에 닿기 힘듭니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그대로 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때 기분이나 감정은 어떠했는가. 무엇을 배우고 깨달았는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네 가지 사항만 제대로 다뤄도 훌륭한 글이 될 수 있습니다.


첫째, 회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며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

둘째, 돈 욕심이 점점 커져서 사직서를 내고 무리하게 사업을 시작한다.

셋째, 순식간에 망해서 모든 것을 잃고 실의에 빠져 인생을 낭비한다.

넷째, 그러다 결국 감옥에 가게 되고, 그 안에서 쓰는 삶을 만난다.

다섯째, 출소 후 막노동을 하면서도 매일 글을 쓰면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내 삶을 만들어간다.


다섯 가지 내용이 책 한 권의 전부입니다. 100퍼센트 저의 경험이고 생각입니다. 자전적 에세이에 가깝지요. 그런데, 수많은 독자들이 '이은대의 이야기'라고 읽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로 해석했습니다. 작가의 경험과 생각에 자신을 비춰 보는 것이지요.


문장 공부를 할 때,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시련과 역경을 만났을 때, 희망을 잃지 말고 노력하라!" 이렇게 쓰면 설명문이 됩니다. 가르치는 글이 되고 말지요. 이 정도 되는 '꼰대 문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알면서도 각성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독자들한테 자극과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의 경험담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것이 최고의 방법입니다.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써 보라고 하면 쓸 게 없다고 하지요. 친구와 있었던 일만 구체적으로 적어도 '인간관계'에 관한 멋진 글이 되는 것이고요. 아이 키우면서 일어났던 일 몇 가지만 자세히 적어도 '사랑과 헌신'이라는 주제가 근사하게 탄생할 겁니다.


혹시, 좋아하는 책 있습니까? 지금 당장 그 책 펼쳐서 몇 페이지만 읽어 보세요. 작가의 경험담이 녹아 있을 겁니다.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로 가르치려고만 드는 책을 좋아하는 독자는 없을 테니까요. 당신이 그 책을 좋아한다면, 아마도 그 책 속에 적혀 있는 작가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비춰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잘 살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라는 문장을 읽으면, 자연스레 내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나아가, 내 어머니가 내게 해주신 말씀도 생각하게 되고요. 그러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어머니에 대한 글을 한 편 적기도 합니다. 이 모든 독자의 반응을 '독서를 통한 화학작용'이라고 합니다. 책 속에 담긴 저자의 경험을 읽으며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기도 하고 나름 해석하기도 하고 또 상상하기도 하는 모든 과정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강의 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어제 뭐했습니까?"입니다.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다이어리를 펼치기도 하고, 천정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불과 하루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데에도 많은 수강생들이 낯설어 하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갑갑해 합니다. 그 만큼 우리는, 자신의 삶을 그저 흘려 보내며 살고 있는 것이죠.


쓰면 쓸수록 과거 경험들이 떠오릅니다. 내 삶에 이런 적도 있었구나 저런 적도 있었구나 하나씩 기억하게 되지요. 새삼 내 삶에 제법 아름다운 구석도 많았구나 깨닫게 됩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놓치고 살았던 소중한 기억들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하나씩 살아나게 되는 것이죠.


메마르고 보잘 것 없다고 여겼던 내 인생에도 세상에 드러낼 만한 보석 같은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나 자신을 꼬옥 안아주고 싶습니다. 수고했다, 잘 살았다, 여기까지 잘도 왔다, 잘 견뎠다, 잘 버텼다, 잘 참았다, 고생 많았다, 울어도 된다, 기대도 된다, 쉬어도 된다,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고맙다, 최고다......


돈 되는 글쓰기요? 팔리는 책쓰기요? 인공지능 책쓰기요? 다들 정신이 어떻게 된 것 아닌가요?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써서 다른 사람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돈과 성공을 외치면서 살았던 인생 전반전은 싹 다 잃고 추락했습니다. 오직 내 이야기 쓰면서 쓰는 과정 자체에 의미와 가치를 두었더니 잃었던 모두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허상과 망상 쫓느라 귀한 인생 낭비하지 말고, 이제 그만 풍선 끊고 내려와 두 발을 땅에 견고하게 딛기 바랍니다. 스무 살만 넘었어도 쓸거리 천지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습니까? 당신의 소중한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저는 듣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저를 보고 싶습니다. 한 가지 기억하고, 한 가지 해석하고, 한 가지 상상하고 싶습니다.


다들 열심히 살아왔는데, 내가 내 인생 기억 못하면 너무 아깝고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지금부터라도 그 아름다운 기억들 하나씩 끄집어내 다른 사람 살아가는 데 도움 좀 주세요. 인생 이야기로 다른 사람 돕는 것이 가장 훌륭하고 근사한 삶입니다. 작가가 되라고 목청 높이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지요.


글 쓰는 방법을 궁금해 하는 사람 많은데요. 일단, 자신의 이야기를 일기처럼 써 보길 권합니다. 그 과정에서 느끼고 깨달은 점 몇 가지만 추려내면, 그것이 곧 주제가 되고 콘텐츠가 되고 책이 된다는 사실. 이제는 멋있는 마음으로 글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작가의 이전글 어떤 길을 갈까? 어떤 길을 만들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