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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Sep 22. 2023

병원 냄새가 싫다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 심장 수술을 한 지 1년 지났다. 그 동안 한 달에 한 번 외래진료 다녔다. 의사는 매번 "괜찮냐?"고 물었도, 아버지는 항상 "괜찮다"고 답했다. 1분 상담을 위해 집에서 병원까지 두 시간 오고 간다. 오늘은 비까지 내려 도로가 더 막혔다. 충분히 일찍 나선 덕분에 예약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영남대학병원 2층 심혈관 센터 입구에 들어섰다. 아버지는 대기실 의자에 앉으셨다. 나는 접수 창구로 가서 아버지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고 순번 대기표를 뽑았다. 대기표 상단에는 "환자명 OOO"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작년 수술 후 아픈 곳이 없는데, 1년 동안 "환자"라고 불리고 있었다.


혈압부터 쟀다. 126에 64. 정상 범위였다. 혈압 수치가 적힌 종이를 담당 간호사에게 전했다.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대기실에서 아버지와 나란히 앉았다. "이재명 구속 여부가 결정나겠구나." 혼잣말로 중얼거리셨다. 여든 두 해를 살아오셨는데, 이제 당신의 삶에만 집중해도 될 터인데, 아버지는 여전히 정치와 사회와 경제와 도덕과 윤리에 온 마음을 두고 계신다.


"1년 지났으니 검사 한 번 해 봅시다."

평소와 다른 의사의 말이 반갑기까지 했다. 두 달 뒤에 '당일 입원'을 하기로 했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상담하기로 정했다. '당일 입원'이란 말이 낯설었다. 아침 일찍 입원해서 검사를 하고 오후 3시쯤 퇴원한다는 뜻이었다.


의사와 상담을 마친 후 입원에 관한 안내와 주의사항을 듣기 위해 담당 간호사와 따로 면담했다. 하루 전에는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고, 전날 저녁부터 금식해야 하며, 당일 아침에 당뇨약은 먹지 말아야 한다. 주의사항이 깨알처럼 적힌 종이 몇 장을 받아들고 심혈관 센터를 나왔다.


수납기 앞에서 계산을 하고 처방전을 출력했다. 바로 옆 주차 계산기에 진료비 영수증 바코드를 접속했다. 요즘은 어딜 가나 사람보다는 기계를 상대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문득 "감사합니다!"라는 인사가 듣고 싶어졌다.


1층으로 내려와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소독약과 병원밥 냄새가 섞인 듯한 묘한 냄새가 났다. 주변 사람들 중에는 코를 막고 인상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병원에 들어올 때는 이런 냄새가 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튼 좋은 냄새는 아니었다. 작년에 아버지 수술 받을 때도, 재작년 어머니 수술 받을 때도, 신혼 때 아내가 수술을 받았을 때도, 병원은 달랐지만 냄새는 같았다.


감옥에서, 막노동 현장에서 별 냄새 다 맡아 보았다. 병원 냄새가 가장 싫다. 소독약 냄새는 금방이라도 나를 환자로 만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밥냄새는 입맛을 뚝 떨어뜨린다. 돌아가신 장모님은 15년 동안 병원 생활을 했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병원에서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잤고, 정성껏 간병한 보람도 없이 장모님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연달아 큰 수술을 하는 동안 나 혼자서 병원을 지켰다. 코로나 때문에 간병인은 한 명만 지정할 수 있었다.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 의사와 간호사에게 하소연하는 소리, 별 것도 아닌 일로 호출하면 시간과 상관 없이 언제든 달려와야 하는 간호사들의 발자국 소리. 그 모든 소리가 병원 냄새와 어울려 내 기억에 새겨졌던 것이다.


약국에 들렀다. 1년 동안 타던 약이라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 작은 알약 몇 개가 아버지의 생명줄인 셈이다. 태산도 옮길 것 같던 아버지의 기세가 알약에 의지하고 있다 생각하니 나이 드는 것이 참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 집으로 향했다. 신천대로에 차를 올렸다. 러시아워가 지난 터라 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창문을 내렸다. 가을 냄새가 났다. "벌써 가을이구나. 시간 참 빨리도 간다." 중얼거리는 아버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신다.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흐렸다. 운전하기 힘들다. 이런 날씨에는 눈이 저절로 감긴다. 몸을 앞뒤로 들썩이며 간신히 잠을 깨운다. 아버지 고개가 옆으로 앞으로 툭툭 떨어진다. 그냥 눈 좀 붙이셔도 되는데, 아들 운전하는 옆에서 조는 게 싫으신지 눈 비벼가며 애를 쓰신다.


"졸리면 한숨 자거라." 굵은 팔로 핸들을 잡고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나를 향해 말씀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기억난다. 또 한 번 고개를 툭 떨구는 아버지에게서 병원 냄새가 났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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