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넘어져도, 해가 져도, 계속 놀고 싶다

그 시절의 우리, 제대로 사는 법

by 글장이


딱지, 비석, 야구. 세 가지 놀이의 공통점은 '치기'다. 어렸을 적 즐겨 했던 놀이다. 딱지 치기를 하면 대부분 잃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분통이 터져 다시 딱지를 접어 나가면 또 전부 잃고 돌아왔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매번 딱지를 몽땅 잃으면서도 나는 딱지 치기가 좋았다.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비석 치기는 그나마 좀 나았다. 몸의 중심도 제법 잘 잡았고, 돌을 던져 목표물을 맞추는 실력도 썩 괜찮았다. 편을 갈라 비석 치기를 하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곤 했었다.


야구는 좀 더 전문적이었다. 보통은 1루와 2루만 정하고 놀았다. 그 시절만 해도 동네에는 시멘트보다 흙길이 많았다. 적당한 공간에 선을 긋기만 하면 금세 야구장이 만들어졌다. 공을 던지고 방망이로 치고 달리고...... 시장에 가면 야구복 비슷한 옷을 팔았는데, 엄마를 졸라 사 입기도 했다.


집안에 있는 날보다 밖에서 노는 때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옷은 늘 더러웠고 양 쪽 무릎과 팔굼치에는 멍이나 흉터가 사라질 틈이 없었다. 부딪치고 넘어지면 피가 질질 흐르고 통증도 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드물었다. 대충 닦아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놀았다.


해거름이 되면 퇴근하는 엄마가 길에서 노는 나를 불렀다. 이제 그만 들어가자 하셨다. 엄마 손 잡고 집으로 들어간 기억 별로 없다. 조금만 더 놀다 갈께! 큰 소리로 대답하면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만 더 놀다가 들어오라고 했다.


골목길에 어둠이 내려앉아 딱지와 비석과 야구공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면, 그제야 친구들은 하나둘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얼굴과 손에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고, 무릎과 팔굼치에 피멍이 들고, 때로 피가 졸졸 흘러내리기도 하면서, 나는 저녁밥을 먹었다.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다. 피가 흐르고 멍이 드는 것이 무서워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망설인 적 많다. 변화는 늘 막막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즐기지' 못했고, 재고 따지고 분석하고 계산하기 바빴다.


어렸을 적에는 넘어지고 피 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 노는 게 훨씬 좋았기 때문에 두려워할 틈조차 없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해가 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계를 보면서 놀았던 적 한 번도 없다. 푹 빠졌다. 몰입했다. 열중했다. 노는 것이 삶의 전부인 양, 무릎이 까져 피가 흐르고 팔굼치에 멍이 들고 해가 서산에 넘어갈 때가 되어도, 나는 '삶'에 오롯이 파고들었던 것이다.


이제 다시, 그 시절의 나를 찾기로 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나. 넘어져도 피가 나도 해가 져도, 그 시간 안에서 마음껏 온 힘을 다해 한 판 놀아 보기로.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고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코밑이 시커멓게 더러워져도 아무렇지 않은 듯. 씩씩하게. 그렇게.

스크린샷 2022-03-20 오후 12.34.00.png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던 시절. 우리 모두에게 있었다. 어른답게 살아야 한다는 '이상한' 문화에 젖어,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어느새 '조심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다.


성장에는 두려움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나아가는 과정이 즐겁고 재미있기만 하면 무릎 까지고 피멍 드는 것 정도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우리 모두의 '경험'을 떠올려야 할 때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책쓰기 수업 명함 신규.jpg


keyword